삼국지로 바뀐 판도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이 3파전으로 재편됐습니다. 한미약품의 국산 GLP-1 비만치료제 에페가 지난 10월 29일부터 일부 의료기관에서 처방되기 시작하면서,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나눠 갖던 판도에 새 축이 생긴 겁니다.
에페는 한국인 44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을 근거로 한국인 맞춤형을 내세웁니다. 시장 자체도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위고비와 마운자로 처방은 278만9992건으로, 지난해 연간 122만2574건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새 진입자가 가세한 셈입니다.
가격과 감량률, 숫자의 함정
가장 눈에 띄는 건 가격입니다. 에페의 첫 4주분 공급가는 12만9800원으로 위고비 약 21만원, 마운자로 약 27만원보다 낮습니다. 초기 용량 기준 위고비 대비 37%, 마운자로 대비 53% 저렴한 수준이고 유지 용량에서도 17~19% 낮습니다. 노보 노디스크가 위고비 가격을 최대 40% 인하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감량 효과는 마운자로가 72주 투여에서 평균 20.9%, 위고비가 68주에 14.9%, 에페가 40주 중간 결과에서 9.75%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임상 조건과 대상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임상 참여자는 평균 체중 105kg 안팎, BMI 38 수준이었고, 에페는 전원 한국인에 평균 88.6kg, BMI 32였습니다. 숫자만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위장관 부작용으로 투약을 중단한 비율은 에페 1.2%, 위고비 4.3%, 마운자로 1.9~4.3%였습니다.
급여 신청과 공급 혼선
시장 구도를 흔들 변수는 건강보험 급여입니다. 노보 노디스크 한국법인은 이달 7일 심평원에 위고비의 요양급여 결정을 신청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고도비만 등 고위험 환자군에 한정한 급여 적용 가능성을 높게 봅니다. 급여권에 진입하면 실질 가격 경쟁력이 역전될 수 있지만, 대상이 일부 환자에 국한돼 시장 전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초기 공급 혼선도 변수입니다. 에페는 재고 부족과 환자 교육 필요성 탓에 의원 중심으로 공급돼, 약국에서는 처방이 나와도 조제할 재고가 없는 상황입니다. 약국 유통은 이르면 12월께 가능할 전망입니다. 여기에 세마글루타이드 특허 만료와 내년 경구용 비만치료제 도입 가능성도 향후 구도를 흔들 변수로 꼽힙니다. 가격과 효과, 접근성이라는 세 축에서 경쟁이 본격화되는 국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