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의 신호등이 붉게 점멸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중동 전쟁의 영향이 국내 물가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에너지 가격이 먼저 치솟았고, 이 흐름이 공업제품으로까지 이어지며 물가 상승의 도미노가 차례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록을 갈아치운 물가지수
3월 들어 에너지와 공업제품 물가지수가 각각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에너지 물가지수는 142.89를 기록해 201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됐습니다. 전년 동월 대비 5.2% 오른 수치로, 2023년 9월 이후 약 2년 반 만의 높은 상승률을 보인 셈이죠. 더욱 주목할 점은 이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 공업제품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겁니다. 같은 달 공업제품 소비자물가지수는 118.80을 찍으며 1985년 해당 통계를 시작한 이래 4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에너지 비용이 공장의 생산 원가로 직결되면서, 공산품 가격 전반에 대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 겁니다. 주요 품목을 보면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했고, 내구재와 섬유제품, 출판물 등도 함께 오름세를 탔습니다.
전쟁에서 시작된 연쇄 반응
이런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계기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입니다. 지역 분쟁이 지속되면서 국제 유가가 불안정하게 움직였고, 이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에너지 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유, 등유, 휘발유 등 석유류 가격이 크게 올랐고, 이는 당연히 운송 및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가 일부 완충 역할을 했다는 분석입니다. 이 제도 덕분에 지난달 석유류 소비자물가지수는 2022년 8월보다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고가격제도 국제유가 변동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가격 상승 압력을 모두 막아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가격 통제가 있더라도 원재료 수입 단가가 오르면 결국 일정 부분은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본격적인 영향은 앞으로
전문가들은 이 물가 상승의 파장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국제 유가의 변동이 국내 공산품 가격에 반영되려면 보통 3개월에서 6개월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즉, 3월에 확인된 에너지 및 공업제품 가격 상승은 그 이전인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의 유가 상승을 반영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최근 중동 정세로 인한 유가 변동의 본격적인 영향은 오는 5월 경의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일부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미 한국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2월 말 평균 2.0%에서 3월 말 2.4%로 높인 것이죠. JP모건은 보고서를 통해 중동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5월부터 9월 사이에는 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돌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항공 부문에서는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인한 항공료 상승이 이미 예고되어 있어, 서비스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에너지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이 공업제품을 거쳐 소비재와 서비스로까지 확산되는 도미노 현상이 본격화될지 여부가 향후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