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묵은 과제에 떨어진 기회의 땅
이재명 대통령의 전북 일정은 한마디로 ‘새만금의 날’이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9조 원을 투자해 인공지능(AI), 로봇, 수소 산업의 복합 거점을 새만금에 조성하기로 한 겁니다. 2029년까지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등을 건설하는 이번 투자는 16조 원의 경제 효과와 7만여 명의 고용 창출을 기대하게 합니다. 대통령은 투자 협약식에서 “새만금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이는 30년 이상 표류해 오며 ‘희망고문’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새만금 사업에 터닝포인트가 될 가능성을 열었죠.
하지만 이번 투자 발표는 단순한 호재 소식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같은 날 열린 전북 타운홀미팅에서 새만금 사업 자체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내놓았어요. “시대 상황에 맞게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며, 정치적 입지를 위해 실현 불가능한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오랜 기간 매립을 통한 농지 조성에 집착해온 기존 방식을 지적하며, 수상 태양광 등 다른 방안을 고려하거나 개발 예산을 지역에 직접 지원하는 방안까지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난제 앞에서 기존 관행을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에너지 식민지 논란과 새로운 해법 모색
새만금 개발과 맞물려 또 다른 쟁점이 부상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송전선로 문제입니다. 타운홀미팅에 참석한 지역 청년은 “기반 시설 계획 단계부터 지역 합의와 이익 공유 구조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는데요. 이에 대통령은 송전망 확충을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하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전력을 생산한 지역에서 먼 곳으로 보내는 기존 방식 대신, 생산지에 대규모 전력 수요 시설을 직접 유치해 지역 내에서 소비하는 ‘분산형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이 발상은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와 맞닿아 있습니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시설인데, 이를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높은 새만금 지역에 둠으로써 송전 부담과 지역 갈등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전략으로 읽힙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입지 및 송전망 건설 시 지역의 이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책을 새롭게 짜겠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개발 방식이 야기한 ‘에너지 식민지’ 논란을 뛰어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모습입니다.
피지컬 AI에서 송광사까지, 소통과 재충전의 행보
이번 전북 방문에서 대통령은 미래 산업 현장과 민생 현장을 아우르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현대차 투자 협약식에 이어 전북대학교 ‘피지컬 AI 실증 랩’을 찾아 AI 기술을 활용한 제조 공정 자동화 사례를 살펴보고 격려했습니다. 이어 전주 신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소통하며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청취하기도 했죠. 첨단 기술과 전통 시장이라는 양극단의 현장을 모두 찾은 것은 균형 발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지막 날 공개된 송광사 방문은 이런 바쁜 일정 속의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오랜만에 마주한 고요함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소회를 밝혔는데요. 공개된 사진 속에서 주지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방문객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은 공식 일정에서 느껴지던 무게감과는 다른,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틀에 걸친 전북 방문이 산업 경제의 중대 발표와 현장 소통, 그리고 개인적 재충전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종합적인 행보였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