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더 무거운 경제적 압박
통장에서 나가는 돈은 늘었는데, 실제로 사고 쓰는 것은 줄어들었습니다. 통계청의 2025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비지출이 코로나19 사태가 있던 202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습니다. 명목상 소비지출은 1.7% 늘었지만, 물가 상승분을 빼면 실질적으로는 0.4% 줄어든 것이죠. 이는 팬데믹 당시의 물리적 봉쇄보다 현재의 고물가·고금리라는 경제적 압박이 가계 지갑을 더 조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2020년 실질 소비가 2.8% 감소한 이후 5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겁니다.
필수 비용은 늘고, 여유 지출은 줄고
감소 폭이 특히 컸던 분야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생활의 여유를 보여주는 항목들이었습니다. 교육비 실질 지출은 4.9%나 급감했고, 가정용품·가사서비스(-6.1%)와 오락·문화(-2.5%) 지출도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 주거·수도·광열비나 식료품비 같은 필수적 생계비는 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4분기 소비가 일시적으로 반등한 것은 명절 경조사비와 고령화에 따른 장례 비용 증가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결국, 가계는 할 수 없는 지출은 하되,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부분에서는 철저히 지갑을 닫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소비 행태의 이분화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죠.
적자 가구 25%와 심화되는 격차
더욱 우려되는 지표는 가계의 재정 건전성입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가구 비율이 25%에 달했습니다. 이는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가구 네 곳 중 한 곳이 매월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부담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소득 하위 20% 가구는 월평균 40만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상위 20% 가구의 소득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고물가의 충격이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하면서 소득 격차를 확대시키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거죠. 전문가들은 4분기의 소비 반등이 내수 회복의 신호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저축을 줄이거나 부채를 증가시켜 소비를 유지하는 '무리한 버티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경제 회복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려면, 단순한 지출액 증가보다는 가계 부채와 저축률 같은 체력 지표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