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의 불씨, 지정학적 긴장에서 시작됐는데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10일째 이어지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 고공행진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만 일대 정유 시설에 대한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항로 교란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불안은 극대화됐죠. 이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 세계 원유 운송의 3분의 1이 지나는 핵심 길목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유가를 밀어올린 겁니다. 모건스탠리는 이 같은 봉쇄가 장기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브렌트유 가격이 13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가 변동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구조적 위기로 해석됩니다.
바다 위 화약고, 실물 경제를 얼어붙게 하다
유가 급등의 충격은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건 소비재 분야인데요, 울프리서치의 분석에 따르면 달러제너럴이나 월마트 같은 소매업체들은 고유가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유가는 운송비와 생산 원가를 올려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가계의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들죠. 더 직접적인 충격은 제조업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국내 최대 에틸렌 공장의 가동 중단이나 반도체 업계의 헬륨 수급 난항처럼, 에너지와 핵심 원자재 수급 차질은 공장 가동 차질로 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호르무즈뿐만 아니라 바브엘만데브 해협, 말라카 해협, 대만해협 등 전략적 해상 길목, 이른바 ‘초크포인트’ 하나가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쌍끌이 쇼크’와 국가별 대응 전략
특이한 점은 이번에 유가 급등과 원화 약세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끌이 쇼크’라는 겁니다. 과거 금융위기 때는 환율이 오르면 유가가 떨어져 충격이 상쇄되곤 했지만, 이번에는 양쪽 모두에서 압력이 가해지고 있죠.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한국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이는 고물가와 저성장을 동시에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불리한 시나리오입니다. 씨티은행은 유가 급등이 한국의 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떨어뜨릴 수 있다고 내다봤어요. 이런 위기 국면에서 각국의 초점은 에너지 수급 안정과 물가 관리에 맞춰져 있습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항로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략비축유 방출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중국은 이란 사태에 대한 태도를 유연하게 바꾸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모습이고, 한국 정부도 내부 방어벽을 강화하는 총력 대응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단기적 위기 관리와 더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한 에너지 공급망의 다변화가 장기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