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이 낳은 역대 최대 예산
반도체 특수로 세수가 역대급으로 호조를 보이면서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안을 내놓았습니다. 내년도 총지출은 821조 원에 달하며, 이 중 162조 3,000억 원은 '미래대응기금'으로 별도 관리됩니다. 류덕현 재정기획보좌관은 내년 법인세만 200조 원을 넘을 것이라며 세수 여건이 상당히 좋다고 밝혔는데요. 이렇게 확보된 여유 자금을 재정의 '댐'으로 쌓아두고, 급한 일이 생길 때 신속하게 꺼내 쓰겠다는 취지입니다.
기금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인재 등 4대 분야에 45조 4,000억 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104조 4,000억 원은 여유자금으로 적립합니다. 또한 일반회계 지출이 급증하는 것을 막고, 국채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거대한 기금의 운용 방식에 있습니다.
국회를 우회하는 30% 재량권
미래대응기금은 '하이브리드 기금'으로 설계되어 주요 항목의 30% 범위 내에서는 국회 사전 승인 없이 운용 계획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세수 결손 보전을 위해 일반회계로 돈을 전출할 때는 이 30% 제한마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100조 원대 자금을 '쌈짓돈'처럼 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우려는 공연이 아닙니다. 기금 지원 대상에 기존 계속사업까지 포함된 데다, 세수 결손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기준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부는 변경 내역을 즉시 국회에 보고하고 사후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의 사전 심사 권한을 제한하는 구조 자체가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수 호조의 다른 얼굴, 공공 IT 대전환
한편, 넉넉해진 재정 여력은 공공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에도 대폭 투입됩니다. 행정안전부는 2030년까지 범정부 정보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지난해 대전센터 화재를 교훈 삼아 재해복구(DR) 체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만 민간 클라우드 이전에 548억 원, 이중 운영체계 구축에 2,716억 원, 노후 장비 교체에 7,700억 원가량이 배정됩니다.
이에 따라 대형 IT서비스 기업과 클라우드 전문 업체들의 수주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한국은행의 긴축 통화정책과 상반된 정책적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인데요. 반도체 호황이 가져다준 풍부한 세수가 과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 제고로 이어질지, 아니면 통제 사각지대를 키우는 뇌관이 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