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 10배를 거절한 모녀의 선택
미국 켄터키주 메이즈빌의 한 농가가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1848년부터 200년 가까이 가문을 지켜온 델시아 베어 씨와 어머니 아이다 허들스턴 씨가 빅테크 기업의 농지 매입 제안을 뿌리치었는데요. 제안 금액은 에이커당 시세의 10배에 달하는 2648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5억 원이었습니다.
모녀가 돈을 거절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해당 부지가 메타가 추진하는 2.2GW 규모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로 쓰일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계약을 철회한 것인데요. 베어 씨는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과 대대로 내려온 땅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인공지능 허브가 들어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선택은 지역 사회를 둘로 갈라 놓았고, 보상금을 기대했던 이웃 농부들의 자금마저 묶이면서 마을 안팎에서 심각한 갈등과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모녀의 거절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기대와 달리, 환경 파괴와 주민 강제 이주라는 현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죠.
넷제로 약속과 달라지는 에너지 지도
데이터센터 반대 여론이 거세지는 배경에는 엄청난 탄소 배출량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분석을 보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이 건설하는 데이터센터 60곳이 가동되면 연간 1억 15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올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휘발유 승용차 2400만 대가 한 해 내뿜는 배출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회계연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각각 25%나 늘었고, 아마존 역시 16% 증가했습니다. 세 기업의 합계 배출량만 1900만 톤에 달하며, 이는 프랑스 전체 연간 배출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당연히 기업들은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데, 현실은 넷제로 약속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미국 텍사스 남부에 데이터센터를 짓으면서 연간 최대 33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대형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청정에너지 공급망이 AI 인프라 구축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빅테크 기업들이 결국 화석연료로 되돌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는 AI의 딜레마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전기만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I 기술이 화석연료 탐사와 생산 효율을 높여주면서 에너지 전환 전체를 늦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로 인한 생산성 개선 효과가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 부문에 동일하게 적용될 경우, 전 세계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억 7000만 톤에서 최대 18억 톤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배출 순감소를 이루려면 재생에너지 부문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화석연료보다 4배에서 5배 이상 높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조건입니다. 정교한 정책 유도가 없다면 AI가 오히려 기존 화석연료 체제의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죠.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전력 계통 불안정과 화석연료 발전 비중 상승이 우려되며, 이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부담까지 키우는 요인입니다. 결국 AI 시대를 맞아 기술 발전과 기후 위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전략적 정책 거버넌스 확립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