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홈플러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3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면서 국내 유통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법원은 2,000억 원의 최소 운영자금 확보가 안 된다면서도 추가 기간 연장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는데요. 이제 홈플러스에게 남은 시간은 단 2주뿐입니다. 20일까지 즉시항고와 함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강제집행과 경매가 재개되어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게 됩니다.
문제는 이 2,000억 원을 둘러싼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의 갈등입니다. MBK는 연대보증 1,000억 원을 전제로 나머지 금액을 메리츠가 대출해줘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반면 메리츠는 이미 1,000억 원을 에스크로에 입금했고, 그 이상은 불가하니 MBK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회생절차가 폐지되면 DIP 채권은 공익채권 지위를 잃어 다른 채권자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자산을 나눠야 하는데, 이미 자산이 바닥난 상태라 사실상 회수 불가능해질 위험이 큽니다.
민생과 경쟁사 지형의 동시 변화
홈플러스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매장을 지키는 근로자와 입점 소상공인들입니다. 현재 홈플러스 직원은 약 1만 2,000명으로, MBK 인수 이후 이미 절반가량 줄어든 상태인데요. 회생절차가 폐지되면 이들마저 대량 실직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정부는 임금체불 대지급금과 저금리 생계비 융자를 지원하기로 했고, 경상남도 등 일부 지자체는 폐점 매장 입점 소상공인을 위해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내놓았습니다.
한편 홈플러스의 몰락은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단기적 반사이익을 안겨줄 것으로 보입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홈플러스가 유지하려던 67개 점포마저 폐점될 경우, 수도권 점포망이 월등히 많은 이마트가 롯데마트보다 더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분석했는데요. 실제로 롯데마트 점포 수가 최근 홈플러스를 넘어서는 등 시장 지형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대형마트 업황 자체가 밝지만은 않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대형마트 경기전망지수는 코로나19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 1~5월 소매판매액도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했습니다. 결국 홈플러스의 사업 중단이 경쟁 강도를 낮춘다는 긍정적 측면과 소비 침체라는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는 겁니다. 업계는 창고형 할인점이나 복합쇼핑몰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옮기는 재편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치권의 진상 규명 압박
홈플러스 사태를 두고 정치권의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민주당 주도로 MBK파트너스와 메리츠를 상대로 한 청문회 추진을 예고했습니다. 민주당은 MBK가 지난 10년간 배당과 자산 매각으로 5조 원 이상을 회수하고도 기업 살리기에는 외면했다며 약탈적 금융 기법과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불참하며 원 구성 항의를 이어가고 있어 여야 대립도 심화되는 양상입니다.
고려아연 노조까지 홈플러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MBK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저항하며 상급 단체의 벽을 넘어 연대에 나섰습니다. 법원이 제시한 2주의 시간이 지나가는 가운데, 자금 확보 실패 시 홈플러스는 파산으로 향하고 민생 후폭풍은 더욱 거칠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