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우의 가족사가 불러온 뿌리 찾기 바람
배우 하영의 증조부가 친일 협력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이토 히로부미 추도 모임인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과 경성부 협의회원 등을 지낸 인물인데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명백한 친일 행위로 규정했고, 하영은 자필 사과문을 통해 역사 인식 부족을 반성했습니다. 이처럼 한 연예인의 가족사가 공론화된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이를 계기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자신의 조상을 찾아보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사실 이 논란이 단순히 한 개인의 과거를 넘어선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식민지배 시대의 전문직 지식인이 어떻게 권력에 협력했고, 그 혜택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는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이 제기된 것이죠.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후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디지털로 엿보는 가계의 민낯
논란이 확산되면서 온라인에서는 성씨와 본관만 입력하면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친일파 스캐너'가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구성했는데요. 이와 함께 287개 성씨와 3,000여 개 본관 정보를 담은 계보 사이트 '뿌리를 찾아서'는 이용자 폭주로 접속 장애가 반복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평소 보학에 무관심했던 대학생 등 청년들이 부모님에게 족보를 묻거나 전문 사이트를 뒤져 일제강점기 당시 조상의 행적을 추적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조상 중 독립유공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된 일화가 공유되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국가보훈부가 훈장을 보관 중인 7,622명의 무명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습니다.
성찰의 계기로 남을까
물론 이 바람이 일시적 유행으로 그칠지, 아니면 진정한 역사 성찰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의원은 선대의 과오는 선택할 수 없지만,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국민의 평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조상을 탓하거나 자랑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역사적 정의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하영이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역시 논란의 여파로 인터뷰가 취소되는 등 작품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배우의 사생활을 넘어, 우리 사회가 식민지 시대의 기득권이 어떻게 세습되었는지 구조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느냐는 점입니다. 젊은 세대가 스스로 뿌리를 찾기 시작한 이 순간이 역사적 진실 규명과 화해로 연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