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격차가 만든 차별의 씨앗
군 복무 경력이 입사 직급과 승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회사 인사 규정이 성차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한 사단법인이 군필 신입사원에게는 5급, 군 미필 신입사원에게는 6급을 부여한 채용 제도에 대해, 성별을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합리적 차별이 아니라고 본 결정을 뒤집은 것으로, 군 경력 우대의 허용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셈입니다.
사건은 해당 사단법인에 근무하는 A씨가 제기했습니다. 회사는 대학 졸업자 중 군 미필자는 6급 10호봉, 2년 군 복무를 마친 제대군인은 5급 12호봉으로 채용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직급 체계였습니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데 보통 2년이 걸리기 때문에, 군필자는 입사와 동시에 군 미필 동료보다 승진 경쟁에서 2년 앞서 나가게 되는 구조였죠. A씨는 이로 인해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대다수 여성 근로자들이 승진에서 구조적으로 불이익을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호봉은 되는데, 직급은 안 되는 이유
법원의 판단은 군 경력에 대한 '보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 접근했습니다. 하나는 임금(호봉)이고, 다른 하나는 직급(지위)입니다. 재판부는 호봉 가산은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군 복무 기간을 경제 활동이 중단된 시기로 보아,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은 제대군인법에 따른 합리적 조치라는 겁니다. 즉, 기본급을 높게 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직급을 높여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법원은 직급 차별이 단순한 임금 차원을 넘어 승진 기회와 경력 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해 같은 일을 하는데, 출발선부터 직급이 다르면 승진 시기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는 군 복무를 하지 않는 대다수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죠. 재판부는 제대군인법이 군 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고 했을 뿐, '승진'에 우대를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승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직급 우대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앞으로 달라질 기업 인사 풍경
이번 판결은 수많은 기업이 시행해 온 군필자 우대 인사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가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채용 시 군 경력에 따라 직급을 차등 부여하거나, 호봉 가산뿐 아니라 빠른 승진 기회를 제공해왔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관행이 성차별 소지가 있음을 명시했고, 특히 승진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군 복무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보상은 필요하지만, 그 선을 어떻게 긋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군 경력에 대한 보상을 임금(호봉, 연봉) 차원에 집중하고, 직급이나 승진 프로세스에서는 가능한 한 평등한 출발선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인사 제도가 개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 판결은 단순한 한 회사의 문제를 넘어, 군필 우대와 고용 평등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논의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