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첫 중형'으로 안전 책임 묻다
지난 20여 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아리셀 화재 참사와 관련해, 법원이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에게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노동 현장의 안전 관리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안전 불감증, 생산성만 좇은 경영진의 책임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박 대표 등이 생산량 달성에 급급해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하고, 비상구 확보 및 소방 훈련과 같은 기본적인 대비도 부족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경영진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한 유족과의 합의가 양형에 제한적으로만 반영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단순히 징벌적 합의금 액수보다는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진의 책임을 무겁게 물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기존 중처법 위반 사건에서 징역 1~2년 안팎의 형량이 선고되는 것과 비교해 크게 이례적인 결정입니다.
'바지사장' 넘어 '진짜 책임자'에게 묻는 법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중처법상 '경영책임자'의 개념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재판부는 단순히 대표이사라는 명목상의 직함만으로는 경영책임자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대신, 안전보건 확보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이를 실행할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인물이 바로 경영책임자라고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기업 총수나 대주주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와 같이 대표이사만큼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한 직책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견제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재판부는 CSO가 안전보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대표이사의 권한에 종속된다면, CSO만으로는 경영책임자로 보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실질적인 의사결정권과 책임을 가진 '진짜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법원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판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변화 요구받는 기업, 안전 투자 확대될까
이번 판결은 기업들이 형식적인 안전 관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안전 인력 및 예산 확충, 작업 환경 개선에 나서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김성희 교수는 이 판결이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정부 역시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에 중처법 양형기준 신설을 요청하며 법 적용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한편,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형사 처벌이 기업 활동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는 반면, 노동계는 실형 선고가 드물어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업들이 중처법의 취지를 살려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문화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