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 쏟아부은 물가 방패
정부가 2026년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 이내로 묶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전기와 가스 요금을 동결하고, 농축수산물 할인 행사를 전면 확대하는 등 서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인데요. 하지만 이런 조치의 이면에서는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비상경제본부 회의를 통해 하반기 공공요금 동결을 확정했습니다. 이와 함께 석유 최고가격을 인하하고, 유류세 인하 연장을 검토하며 에너지 가격 안정에 집중했습니다. 장바구니 물가를 잡기 위해선 계란 전 품목 20% 할인과 신선란 2억 개 추가 수입, 쌀 할인율 확대 등 역대 최대 규모의 농축수산물 지원에 3,500억 원을 배정했습니다.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지원에는 1조 원을 투입하며 민생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요금 동결의 그림자, 늘어나는 공기업 부채
문제는 공공요금 동결로 인한 원가 상승분이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제표에 그대로 쌓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전력의 부채는 1분기 기준 200조 원을 넘어섰고,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은 13조 원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고환율이 맞물리면서 이런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발전 공기업들도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남부발전은 하반기 만기 차입금 상환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최대 3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외화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 말 기준 한국전력과 한수원, 발전 5개사의 총 차입금 규모는 113조 8,000억 원에 달합니다. 특히 하반기에는 한국전력이 18억 달러, 한수원이 5억 달러의 외화사채를 상환해야 해 재무적 압박이 상당합니다.
물가 3% 목표와 재무 건전성 사이
정부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3% 관리라는 단기 목표를 위해 가용한 정책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기업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요금 인상 압력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사실상 빚으로 버티는 물가 안정이 지속될 경우,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석유 최고가격제와 공공요금 동결이 국민의 생계비 부담을 줄여주는 건 분명합니다. 다만 에너지 공기업의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구조적 대책 없이 재정 투입과 요금 억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단계적인 비상대응 조정을 통해 경제 정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물가 안정과 재무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작업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단기적인 물가 방어를 넘어, 에너지 공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