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간극, 25년이 만든 다른 풍경
9·11 테러 25주년을 맞은 2026년, 미국 사회는 여전히 그날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입소스 여론조사 결과 미국 성인의 47%는 이 사건을 생애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꼽았는데요. 응답자의 75%는 당시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9·11은 교과서 속 역사이자,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존재했던 공항의 엄격한 보안 같은 일상으로 다가옵니다. 세대에 따라 9·11은 직접적인 비극이자 동시에 구조화된 사회 시스템으로 인식되는 셈이죠.
바뀐 일상과 가속화된 분열
사실 9·11은 미국의 일상을 뿌리째 바꾼 사건이 맞습니다. 공항에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보안 체계가 들어섰고, 세계무역센터 붕괴 당시 먼지와 유독 물질에 노출된 40만 명 이상은 지금도 건강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이어진 전쟁, 그리고 확대된 정보기관 감시 권한은 모두 이 사건 이후의 변화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9·11이 미국의 분열을 '만들어낸'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갈등을 가속화한 촉매였다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나 세계무역센터 초기 테러를 볼 때,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의 뿌리가 원래 있었다고 분석했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 역시 단순히 9·11 이후의 반발심 때문만은 아니라, 1990년대부터 이어진 극우 민병대 운동과 반이민 정서가 작용한 복합적 결과로 해석됩니다. 젊은 세대는 오히려 냉전이나 9·11보다 스마트폰과 AI 같은 기술 변화를 시대의 경계로 여기며, 이 사건을 미국 분열사의 중간 장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추모를 넘어 제도로 남겨야 할 교훈
25주년 추모 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단순한 애도를 넘어 실질적인 교훈을 제도로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9·11위원회는 정보기관들이 위험 신호를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고, 경찰과 소방, 연방과 지방 기관 간 통신이 두절되어 지휘 체계가 무너졌음을 지적했습니다. 당시 기관들이 통합 지휘 체계와 상호 운용 가능한 통신망을 갖췄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희생자를 진정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인데, 이는 최신 장비보다 평소의 훈련과 제도적 준비에서 나옵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이후 시행된 대피훈련과 계단 조명 개선이 2001년 당시 수많은 생명을 구했던 것처럼 말이죠. 비슷한 실패는 한국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최근 거제시의 기록적 폭우 사태에서도 정보 공유 미흡과 초동 대응 지연이 지적되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단순히 추모의 대상으로 남기지 않고, 현장에서 작동하는 훈련과 제도로 살리는 것. 그것이 25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