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뒤늦은 사과의 시작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8년 전 방송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2018년 7월 방영된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편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변호인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언급하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는데요. 당시 경찰과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의혹을 주장한 장영하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허위사실공표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적으로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자, 제작진은 “확실한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한 점을 깊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 사과를 직접적으로 촉구한 당사자입니다. 그는 SNS를 통해 해당 방송이 자신을 ‘살인 조폭’으로 몰아갔다고 비판하며, 정치적 목적의 거짓 보도로 사람을 매장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사과는 한 번 제기된 의혹이 수년간 피해자의 삶을 따라다니는 현실을 드러낸 사례가 됐습니다.
사과문 속 ‘살인’ 해시태그, 진정성 논란
그러나 사과 과정 자체가 새 논란을 낳았습니다. SBS가 사과 소식을 SNS에 게시하면서 ‘#의혹’, ‘#대통령’, ‘#이재명’ 등과 함께 ‘#살인’ 해시태그를 포함시킨 겁니다. 이는 사과의 취지와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죠. 누리꾼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오히려 의혹을 다시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냐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SBS는 이후 “자동 생성된 해시태그에 부적절한 단어가 포함된 점을 인정한다”며 해명과 재차 사과에 나섰습니다. 게시물은 삭제됐지만, 캡처 이미지는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이 작은 실수 하나가 방송사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공식 입장과 실제 실행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됐습니다. 사과의 무게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까지 포함한다는 점을 일깨워줬죠.
‘언론 길들이기’ vs ‘책임 있는 자유’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본격적인 논쟁으로 비화했는데요. 노조는 이 대통령의 사과 요구를 ‘언론 길들이기’로 규정하며,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성역 없는 보도를 이어가겠다고 맞섰습니다. 그들은 해당 보도가 장영하 변호사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취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을 보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연이어 SNS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언론의 자유는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헌법이 ‘정론직필’을 전제로 언론을 특별히 보호한다고 설명했죠. 그의 핵심 주장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유포할 경우, 그 악영향을 고려해 일반인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고, 책임 없는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사과 요구를 넘어,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권력의 비판과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이 사실 검증과 공정성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8년 전 방송 한 편이 불러온 이 논쟁은, 허위 정보가 낳은 상처의 깊이와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우리 앞에 남겨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