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현수막과 70년 된 법의 개혁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혐오 표현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지시하며 정치권과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11일 "있는 사실을 얘기한 걸 가지고 무슨 명예훼손이냐"며 형사 처벌보다 민사 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70년 넘게 유지된 형법 조항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의지로 읽힙니다.
특히 대통령은 길거리에 무분별하게 게시되는 정당 현수막 문제를 지적하며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철거가 어려운 상황을 문제 삼았습니다. 현재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정당 명의의 현수막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악용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수막 규제의 법적 공백
민주당은 대통령의 지시 직후 정기국회 내 정당법 및 옥외광고물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김현 민주당 의원은 불법 현수막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거짓과 혐오를 근절하기 위한 법 개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2022년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 정당 현수막 설치에 대한 장소 제한을 없앤 점입니다.
실제로 '현수막 정당'이라고 불리는 군소 정당들이 중국 비방이나 대통령실 관련 의혹을 담은 현수막을 전국에 게시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었습니다. 국민소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만 해도 불법 현수막 신고가 540건 접수되었고, 이 중 216건이 철거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법적 공백으로 인해 혐오 표현이 담긴 현수막이 공공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논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307조 1항에 규정되어 있으며, 미국·독일·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조항입니다. 이 조항은 진실을 적시했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오랫동안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내부 고발을 막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최근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 씨의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 사건이나 고 표예림 씨의 학교 폭력 피해 고발 사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육비 체납자 신상 정보를 공개한 구 씨는 유죄를 확정받았고, 표 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여야의 첨예한 입장 차이
민주당은 형법 개정안을 통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동시에 허위·조작정보 유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최대 5배까지 강화하는 '가짜뉴스 근절법'과 연계해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오히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첨예한 갈등을 야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당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해 법정형을 상향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2021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있었던 만큼, 법 개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향후 전망과 과제
대통령의 지시에 법무부 장관은 "신속히 하겠다"고 답변한 상태입니다. 민주당은 연내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경험이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혐오 표현 규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중국 정부가 혐중 시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점도 이번 논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 내 극우 세력의 행동이 양국 우호를 해친다고 비판하며 한국 정부의 조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70년 된 법 체계의 현대화가 이뤄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