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만 개의 그림자, 더는 방조가 아닌 정범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 통합지원단의 분석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수집된 3만 4,600여 개 사이트 가운데 19.3%인 6,600여 개가 여전히 접속 가능한 상태였고, 이곳에 올라온 한국인 관련 영상은 약 215만 개에 달했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77.6%가 10대와 20대 저연령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세대적 위협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기존에는 불법 촬영물을 직접 제작하거나 유포한 경우에 주로 처벌이 이루어졌는데요. 사이트 운영자들은 단순 플랫폼 제공자라는 이유로 방조 혐의만 적용되어 처벌 수위가 낮았습니다. 이에 정부는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해 사이트 개설 행위 자체를 독립범죄로 규정하고, 도박장 개설죄와 유사한 수준의 처벌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운영자는 더 이상 방조범이 아닌 정범으로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삭제를 넘어 뿌리를 끊는 수사
도메인 주소만 바꿔 재개설하는 이른바 도메인셔틀링 기법 때문에 기존 접속 차단 방식의 한계가 명확해졌습니다. 지난해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요청한 삭제 건수 가운데 28.5%가 미처리로 남았고, 해외 서버를 이용한 경우에는 사실상 손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수사기관이 법원 영장을 받아 불법 사이트 서버에 직접 접속해 데이터를 삭제하고 단서를 수집하는 이른바 능동적 방어제도, 즉 합법적 해킹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호주와 영국의 사례를 참고한 이 제도는 은밀하게 운영되는 범죄 인프라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대됩니다. 아울러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배너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광고 게재 금지와 운영 계좌 거래 정지 조치도 병행됩니다. 범죄 수익이 막히면 사이트 운영 동력 자체가 사라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이번 대응의 핵심입니다.
남은 과제와 범죄 생태계의 미래
이재명 대통령은 타인의 존엄을 짓밟아 돈벌이로 삼는 파렴치한 범죄를 예외 없이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나선 이번 방안은 기존의 단순 삭제 지원에서 범죄 구조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대응 체계를 전환한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해외 CDN 사업자와의 협력을 우회하는 최신 수법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수사기관의 권한 확대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를 방지할 안전장치 마련도 중요합니다. 관계기관 간 이해관계 충돌이나 정치적 소모전이 실효성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죠. 디지털 성범죄와의 싸움은 기술과 제도, 그리고 지속적인 국제 협력이 함께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