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은 웃고, 애플은 울었다
AI 시대의 반도체 풍경이 역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역대급 실적을 내놓으며 주가가 16% 급등한 반면, 애플은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는 이유로 주가가 6% 넘게 폭락했습니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비상이 걸린 셈인데요. 시장은 이제 AI 수요 확대가 반도체 업체에겐 축복이지만, 빅테크 기업들에겐 무거운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뉴욕증시는 다우지수가 소폭 상승하며 장중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과 S&P 500 지수는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애플은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100달러에서 300달러 인상한다고 밝히면서 2025년 4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제품 가격 인상 여파로 3%대 하락했습니다. 메타와 알파벳, 아마존도 데이터센터 비용 증가 이슈로 동반 약세를 나타냈습니다.
메모리 강자의 시대, 그 이면의 대가
마이크론의 3분기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고, 매출총이익률은 무려 84.9%에 달했습니다. 회사는 다음 분기 이익률이 86%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폭증한 결과입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마이크론 주가를 끌어올렸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코스피가 5% 넘게 급등하는 효과까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메모리 가격 상승이 빅테크 기업들의 원가 부담으로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애플이 제품 가격을 인상한 것은 메모리 부족과 부품 가격 급등을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 셈입니다. 캐롤 슐라이프 BMO 패밀리 오피스 최고투자책임자는 한 기업의 엄청난 수익이 결국 다른 누군가의 대가라는 점을 시장이 깨닫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마이크론의 화려한 실적 뒤에는 애플과 같은 고객사, 그리고 최종 소비자들의 부담이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혼조세 속 주목해야 할 변수들
뉴욕증시의 혼조세는 이러한 산업 구조적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반도체 업종은 강세를 보이는 반면, 완제품과 빅테크 기업들은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5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4.1% 상승하며 2023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근원 PCE 역시 3.4% 올라 물가 압력이 여전함을 확인시켜 줬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선박 피격 사건으로 국제유가까지 반등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도 시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증시는 삼성전자의 80조원 자사주 매입과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 기대감으로 단기 급반등을 이뤄냈지만, 코스피 야간선물이 하락하며 26일 장에서는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반도체 외 소외 업종으로의 순환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AI 인프라 투자는 계속될 것입니다. 다만 메모리 가격 상승이 빅테크의 마진을 위협하고, 이것이 제품 가격 인상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업황의 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크론의 신기록과 애플의 주가 폭락이 동시에 등장한 이날, 시장은 AI 시대의 진짜 청구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