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과 개발의 경계에서
서울 종묘 앞에 145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게 되면서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발전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을 고시하며 건물 최고 높이를 기존 70m에서 145m로 상향 조정한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는데요, 이 결정에 대해 문화유산단체들과 전문가들은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33개 문화유산 관련 단체들이 공동 성명을 통해 "종묘의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고층 개발은 세계유산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규탄했습니다. 한국고고학회, 한국도시사학회를 비롯한 학계와 국가유산보존기술협회 등이 함께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서울시의 입장과 전문가들의 우려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거부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지만, 실제로는 영향평가 절차 없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 측은 종묘와 세운4구역이 180m 이상 떨어져 있고, 유네스코 문서에 구체적인 거리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국가유산청이 제출한 2023년 정기보고서에는 100m 이내 구역만 완충구역으로 관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고 있죠.
반면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최재헌 위원장은 "종묘의 신성성을 훼손할 수 있는 142m 건물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종묘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조상 숭배 의례가 이어져 온 신성한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특히 종묘 정전은 경사로를 통해 조상을 우러러보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고층 건물에서 종묘를 내려다보는 상황 자체가 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정치적 논란과 국제적 관심
논란은 문화유산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이슈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세훈 시장에 대해 "고생 많으셨죠"라고 언급하며 간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오세훈 시장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오 시장의 주목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죠.
시민단체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유네스코 본부에 직접 서한을 보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청했습니다. 이번 요청은 한국 정부에만 문제를 맡기지 않고 유네스코가 직접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 있는 움직임입니다. 유네스코는 이미 지난 4월 서울시에 영향 평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향후 전망과 해결 과제
가장 큰 쟁점은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입니다. 서울시는 도시 발전과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강조하는 반면, 문화재계는 이번 사례가 다른 5대 궁궐과 조선왕릉 주변 개발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연경 연세대 교수는 "종묘는 건물뿐 아니라 종묘제례라는 무형유산까지 함께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상황은 서울시와 문화재청, 시민단체 사이의 신뢰 회복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보호와 도시 발전이라는 두 가치를 모두 존중하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유네스코의 공식 입장과 향후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