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조건이 만든 기현상
한때 한국 신혼부부들의 꿈의 여행지였던 괌이 이제 항공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노선이 되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조건으로 괌 노선 이관 입찰이 진행됐지만, 단 한 곳의 항공사도 참여하지 않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했는데요. 이것은 단순한 경영 판단을 넘어 한국 항공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대형 항공사의 합병을 승인하면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6개 국제노선을 다른 항공사에 넘기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괌 노선만 유독 응모자가 없는 겁니다. 다른 노선들은 여러 항공사들이 관심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죠.
허니문 섬의 추락
괌의 몰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한때는 가까운 태평양 휴양지라는 이점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시설 노후화와 물가 상승으로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슈퍼태풍 '마와르'의 직격탄을 맞으며 주요 리조트가 큰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한 이미지 타격도 컸습니다.
통계 수치가 이야기해주는 사실이 있습니다. 현재 괌 노선을 이용하는 여객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52.1%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다른 국제노선들이 대체로 회복세를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낙후된 모습이죠. 여기에 달러 강세로 인한 환율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있습니다.
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은 비행기
가장 극적인 상황은 현재 괌 노선을 운항중인 항공기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최신 기종인 보잉 787-10을 인천-괌 노선에 투입하면서 하루 13편의 항공기가 괌으로 날아가고 있는데, 어떤 비행기는 승무원 수가 승객보다 많을 정도로 탑승률이 저조하다고 합니다. 동남아 인기 노선보다 더 많은 편수가 운항되고 있지만, 정작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공정위의 '공급 유지 의무' 조건이 있습니다. 합병 승인 조건으로 2019년 공급 좌석의 90% 이상을 유지하도록 한 조치인데요, 당초 항공권 가격 인상을 막으려는 취지였지만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파생되는 피해와 해법 모색
이러한 과잉 공급 상황은 저비용항공사(LCC)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되고 있습니다. 항공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급감했고, 결국 제주항공은 13년 만에 괌 노선에서 철수했습니다. 티웨이항공도 내년 3월까지 운항 중단을 결정한 상태입니다. LCC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번 조치가 경쟁사를 밀어내고 독점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다행히 공정위 측은 공급 유지 조건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밝히며 유연한 접근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대한항공도 시장 및 수요 변화를 고려해 관련 당국과 논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전문가들은 이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조언합니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규제는 결국 항공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