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찍은 서명, 남겨진 과제
미국과 이란이 110일간의 무력 충돌을 끝내는 종전 양해각서에 정상 서명을 마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만찬장에서 문서에 서명했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이에 답했습니다. 양국 정상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서명을 마치면서, 스위스 뷔르겐슈토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식 서명식은 아예 생략되었습니다.
이란 외무부는 이미 정상들이 서명한 마당에 별도 행사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는데요. 대신 이곳에서는 밴스 미국 부통령과 갈리바프 이란 의장을 비롯한 양국 대표단이 파키스탄, 카타르 등 중재국과 함께 60일간의 본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철통 보안 아래 진행되는 이번 협상은 합의문의 세부 내용을 구체화하고 실제 이행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60일 무료' 뒤에 숨은 통행료 쟁점
이번 합의로 가장 먼저 주목받는 건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입니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이란은 60일 동안 상선들이 비용 없이 해협을 통과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초대형 유조선 3척이 이미 해협을 통과했고, 그중 한 척은 한국 울산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60일이라는 기간이 끝나면 이란이 서비스 수수료 명목으로 통행료를 받겠다고 밝혀놓아, 해운업계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한국 국적 선박 24척과 선원 137명이 고립돼 있는데요. 정부는 어떤 성격의 통항료도 부당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기에 기뢰 제거 작업으로 초기 30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인 무료 통항 기간은 60일보다 훨씬 짧아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00여 척의 선박이 한꺼번에 빠져나오려 하면 병목 현상까지 우려됩니다.
'선지급' 논란과 비핵화 숙제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먼저 지불하는 구조가 눈에 띕니다. 미국은 서명 즉시 해상 봉쇄를 풀고 원유 수출 제재를 유예하며, 동결 자산 사용도 허용했습니다. 또한 3,000억 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 기금 조성도 약속했습니다. 반면 이란이 내놓은 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원론적 재확인과, 구체적인 핵 프로그램 폐기나 탄도미사일 능력 제거 같은 핵심 쟁점은 모두 60일 본협상으로 미뤄뒀습니다.
이러한 불균형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우라늄 농축 금지 같은 구체적 조항이 빠진 점을 지적하며, 이란이 실질적 양보 없이 경제적 실익만 챙겼다고 주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가 상승과 유가 하락을 내세우며 합의를 옹호하고 있지만, 60일 안에 핵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토론이 이어질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등에서 군사 작전을 계속할 경우 합의 위반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환영하며 중동 정세 안정과 세계 에너지 시장 회복을 기대했습니다. 다만 60일간의 본협상이 성공하려면, 양측이 통행료와 핵 프로그램, 제재 해제 속도 등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동의 긴장이 진짜로 풀리는지는 앞으로 두 달의 협상 내용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