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조 원 슈퍼 예산과 162조 원의 미래 곳간
정부가 내놓은 2027년 예산안은 규모부터 압도적입니다. 총지출을 820조 9천억 원으로 확정했는데요. 이는 지난해보다 12.8%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법인세와 소득세가 크게 늘면서 세수 전망이 8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 결과입니다.
이번 예산의 가장 큰 특징은 162조 3천억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 신설입니다. 정부는 이 가운데 45조 4천억 원을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 등 4대 분야에 바로 투입하고, 12조 5천억 원은 국채 상환에 쓸 계획입니다. 나머지 104조 4천억 원 이상은 여유자금으로 적립해 두었다가 세수가 줄거나 긴급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신속하게 꺼내 쓰겠다는 구상입니다.
사실 이런 거대 기금은 재정의 댐 역할을 한다는 취지입니다. 추경 편성이나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도 예상치 못한 재정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죠. 하지만 국회의 사전 심사 범위가 제한적이고, 세수 결손 보전을 위한 일반회계 전출 시에는 통제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정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쌈짓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첨단산업과 청년에 쏠린 투자
이번 예산은 성장 동력 확보에 무게를 둔 모습입니다.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를 위한 3대 메가프로젝트 예산은 올해 10조 8천억 원에서 내년 21조 3천억 원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특히 2조 6천억 원 규모의 반도체 특별회계를 신설해 서남권 클러스터 조기 착공과 인력 양성을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지방 성장을 위한 예산도 대폭 늘렸습니다. 지방행정 예산을 22.8% 증액하고, 2조 8천억 원 규모의 초광역계정을 신설했는데요. 기업의 지방 투자를 유도하는 특별보조금과 정주 여건 개선 지원금을 통해 지역 내 기업과 인재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청년 지원 예산은 43조 3천억 원으로 편성돼 전년보다 53.5%나 급증했습니다. 청년미래적금의 소득 기준을 완전히 폐지해 모든 청년을 지원 대상으로 확대한 점은 눈에 띕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생산적 선순환 재정 전략의 핵심은 결국 청년과 첨단산업에 투자해 경제 파이를 키우자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밀린 복지와 기후, 그리고 통제 논란
반면 복지와 고용, 기후환경 분야는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보건·복지·고용 예산 증가율은 9.3%, 환경 분야는 5.2%에 그쳐 전체 재정지출 증가율 12.8%를 밑돌았습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이번 예산이 청년 지원에 너무 편중돼 다른 취약계층과의 균형이 부족하고, 기후 위기 대응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회 안전망 측면에서 기준 중위소득을 6.7% 인상하고 노인 일자리를 확대한 것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김현동 배재대 교수는 중위소득 인상만으로는 실질적인 복지 현실화가 어렵고, 양극화 완화와 내수 진작을 위한 대응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역시 논란의 중심입니다. 해당 기금은 하이브리드 형태로 주요 항목의 30% 범위 내에서는 국회 사전 승인 없이 운용 계획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세수 결손 보전을 위해 일반회계로 전출할 때는 이 30% 제한조차 적용되지 않아 정부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불확실한 반도체 사이클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라고 반박하지만, 전문가들은 국회의 예산 통제권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