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종료 40분 전에야 전달된 '용지 부족' 보고
6월 3일 지방선거 본투표일, 투표용지가 부족해지면서 전국적으로 혼란이 빚어진 사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투표 종료를 불과 40분 앞둔 오후 5시 20분에야 대변인으로부터 구두 보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종합상황실은 이미 오후 4시 25분에 송파구 가락2동 제3투표소로부터 항의 전화를 접수한 상태였는데요. 결국 상황 인지 후 한 시간가량이나 고위직 보고가 늦어진 셈입니다.
더 심각한 곳도 있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이 제기된 뒤 무려 5시간 넘게 지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중단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보고 체계의 마비는 현장 혼란을 키웠고, 유권자들의 불안감도 함께 커졌습니다.
4년 전 오답노트를 그대로 재현한 시스템 붕괴
사실 이번 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게 아닙니다. 2022년 대선 이후 선관위 혁신위원회는 162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평균의 오류', '시뮬레이션 미비', '보고 없는 전결 처리', '선제 대응 실패', '인력난'을 5대 핵심 실책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판박이처럼 되풀이되었습니다. 선관위는 유권자 수 대비 투표용지 하한선을 60%에서 50%로 낮추면서 지역별 투표율 편차를 간과했고, 별도 시뮬레이션이나 매뉴얼 없이 사무총장과 정책실장의 전결로 처리했습니다.
노 전 위원장의 해명 역시 논란을 키웠습니다. 그는 투표용지 인쇄 물량 축소 지침을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다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 앞에서 뒤늦게 인정했는데요. 당시 기억에 의존했다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책임 회피를 위한 거짓 증언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선관위 진상규명위원회 역시 이번 사태를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로 규정하고 노 전 위원장 등 12명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합수본 수사 속도내는 가운데, 이어지는 시위와 새로운 의혹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주말에도 투표소 근무 지자체 공무원들을 소환하며 당일 행적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합수본은 투표소 근무자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지역 선관위 직원, 그리고 필요하면 노 전 위원장 등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수사 범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뿐 아니라, 배우자 동행 해외 출장이나 직원들의 유명 휴양지 출장 등 외유 의혹까지 포함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태입니다.
한편,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들은 서울 올림픽공원 개표소를 봉쇄한 채 17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재선거와 당일 투표 수개표를 요구하며 장기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경찰은 가스총 소지자 제지 등으로 안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선거 관리 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우고 있는 만큼, 합수본 수사와 함께 선관위 스스로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