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위기 속에서 등장한 구원 투수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등 외환 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국제 유가 급등과 중동 정세 불안까지 겹치면서 코스피는 6% 가까이 급락했고,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시장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이런 ‘트리플 쇼크’ 속에서 정부와 금융당국, 증권사가 내놓은 해법이 하나 있습니다. 해외 주식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들을 국내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국내주식 복귀계좌(RIA)’입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로 들여오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일종의 인센티브 제공입니다.
RIA는 지난 3월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법안 처리 지연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출시를 강행한 배경에는 달러 수요를 줄여 환율 상승 압력을 완화하려는 긴박한 목표가 있습니다. 출시 첫날만 해도 주요 증권사에서 8300개가 넘는 계좌가 개설될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복잡한 법적 절차보다는 시장의 현실적 필요가 더 컸던 셈입니다.
어떻게 작동하고, 증권사들은 어떻게 싸우나?
RIA의 메커니즘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지난해 12월 23일 이전에 매수한 해외 주식이나 ETF를 매도한 후, 그 자금을 국내 주식이나 국내주식형 펀드에 1년 이상 재투자하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혜택의 규모는 복귀하는 시기에 따라 차등 적용됩니다. 5월 말까지 복귀하면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100% 전액 면제해 주고, 7월까지는 80%, 연말까지는 50%를 감면해 줍니다. 개인당 최대 5천만 원 한도 내에서 적용되는 이 혜택은 상당한 매력 포인트입니다.
이러한 정부의 제도에 증권사들의 경쟁이 불을 지폈습니다. 단순히 계좌를 열어주는 수준을 넘어, 가입자 유치를 위한 파격적인 이벤트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토스증권은 계좌 개설 시 예상 절세액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편의 기능을 강조했고, 신한·삼성·한국투자증권 등은 수수료 우대와 현금성 지원금을 내걸었습니다. 메리츠증권은 총 1억 원 상당의 골드바와 현금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공개하며 파격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환율 폭등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해외에 나가 있던 자금과 투자자를 자신의 플랫폼으로 끌어오는 것입니다.
‘락인 효과’는 발생할 수 있을까?
RIA 제도의 성패는 단순한 자금 유입을 넘어, 그 자금이 국내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만드는 ‘락인 효과’에 달려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등에서 비슷한 정책을 시행해 일정한 성과를 봤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있습니다. KB증권의 분석처럼, 단기 차익 거래 중심의 자금 흐름을 중장기 투자로 전환시켜 증시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하방을 지지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겁니다.
하지만 몇 가지 관문도 남아 있습니다. 첫째는 제도 악용을 막는 장치가 잘 작동할지입니다. RIA 계좌로 세제 혜택을 받고 난 직후 다른 일반 계좌로 해외 주식을 재매수하는 ‘체리피킹’을 방지하기 위해 공제율 조정 규정이 마련됐지만, 실효성은 지켜봐야 합니다. 둘째는 더 큰 시장 흐름입니다. 중동 정세 등으로 인해 달러 선호 현상이 지속된다면 RIA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결국 이 제도는 글로벌 시장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 시장의 상대적 매력을 증명하는 ‘시험대’에 오른 셈입니다. 투자자들은 세제 혜택이라는 당근과 함께, 한국 주식 시장의 미래 가치를 저울질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