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내밀기 위한 64억의 무게
한국 사회에서 ‘부자’의 기준이 다시금 재편되고 있습니다.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이른바 ‘금융부자’가 47만 6천 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전체 인구의 0.92%에 불과한 이들이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60.8%, 무려 3,066조 원을 쥐고 있습니다. 1인당 평균 금융자산은 64억 4천만 원으로, 불과 1년 새 3억 원 이상 늘었습니다. 2011년 13만 명에서 3배 이상 불어난 이들의 자산 증가 속도는 일반 가구보다 두 배나 빠릅니다.
이렇게 빠른 자산 증가의 배경에는 주식 시장의 호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주식 투자로 수익을 냈다고 답한 부자는 34.9%에 달했으며, 이들은 평균적으로 국내 주식 5.8개, 해외 주식 4.9개 종목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주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고, 해외 투자 국가로는 미국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의 강한 반등이 부자들의 자산을 끌어올린 주요 동력이 된 겁니다.
‘일편단심’ 부동산에서 벗어나는 자산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자산 포트폴리오의 변화입니다. 여전히 부동산이 총자산의 54.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 비중은 2021년(59.0%) 이후 4년 연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눈에 띄는 것은 금, 보석, 그리고 가상자산 같은 대체 투자처에 대한 관심입니다. 가상자산(코인)을 내년 유망 투자처로 꼽은 비율이 1년 전 1.8%에서 12.5%로 급증했고, 금과 보석에 대한 관심도 8배 가까이 높아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실제 투자 행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중이 소폭 줄어든 만큼, 그 자리를 ‘기타 자산’이 채우고 있는 구조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규제 불확실성과 관망세 속에서 자금이 새로운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과거 ‘땅 부자’에서 ‘금융 부자’를 거쳐, 이제는 그 영역이 더욱 다변화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위험은 회피하되, 기회는 주식에서 찾는다
불확실한 경제 환경은 부자들의 투자 성향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적극투자형이나 공격투자형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안정형’과 ‘안정추구형’ 투자자의 합이 49.3%로 절반에 가까워졌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대내외 불확실성을 우려해 자산 보존에 더 신경 쓰는 모습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위험 회피 성향에도 불구하고 가장 주목하는 고수익 투자처는 여전히 주식입니다. 향후 1년 이내 고수익이 예상되는 투자처로 55%의 부자가 주식을 꼽았으며, 3~5년 중장기 투자처에서도 49.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주식 투자 금액을 늘리겠다는 의견이 줄이겠다는 의견보다 3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주식 시장의 상승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업으로 모으고, 투자로 불린다
부자들이 이 거대한 자산을 어떻게 모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나옵니다. 자산 축적의 주요 원천 1위는 ‘사업소득’(34.5%)이었습니다. 그 뒤를 부동산 투자 이익(22.0%), 금융 투자 이익(16.8%)이 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상속이나 운만으로 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 종잣돈을 마련하고, 부동산과 금융 투자를 통해 자산을 증식시키는 경로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이상적인 부자 기준은 총자산 100억 원 수준으로, 부동산 50억 원, 금융자산 40억 원, 기타 자산 8억 원 정도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단일 자산에 올인하기보다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선호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성공적인 자산 관리의 첫걸음으로 ‘지속적인 금융 지식 습득’을 가장 중요하게 꼽은 점은, 단순한 운이 아닌 노하우와 공부가 부의 공식에 포함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