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의 진화: 베라 루빈 플랫폼
엔비디아가 지난 GTC 2026에서 선보인 차세대 AI 인프라 플랫폼 ‘베라 루빈’은 단순한 성능 향상을 넘어서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AI가 단순히 답변을 생성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 시대를 위한 토대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공개된 베라 CPU, 루빈 GPU, 그록 3 LPU 등 7종의 신규 칩은 각각 훈련, 추론, 특화된 언어 처리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슈퍼컴퓨터처럼 협업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베라 루빈 NVL72’ 랙은 이전 세대 대비 GPU 수를 크게 줄이면서도 대규모 혼합 전문가 모델을 효율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해, AI 연산의 에너지 및 비용 효율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하드웨어 진화는 단순한 성능 숫자 경쟁이 아닙니다. 엔비디아는 동시에 ‘DSX 플렉스’ 같은 동적 전력 관리 솔루션을 선보이며, AI 데이터센터 전체를 전력망과 유연하게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에셋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죠. 이는 향후 폭발적으로 증가할 에이전틱 AI의 연산 수요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수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읽힙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오픈클로의 야망
하드웨어만으로는 에이전틱 AI 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젠슨 황 CEO가 ‘개인 AI 시대의 윈도우’에 비유한 오픈소스 AI 에이전트 플랫폼 ‘오픈클로’는 이 그림의 또 다른 핵심입니다. 오픈클로는 사용자가 복잡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스스로 작업을 완료하는 자율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엔비디아는 이 오픈소스 생태계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하면서, 동시에 기업이 안심하고 도입할 수 있도록 보안 강화 버전 ‘니모클로’와 안전한 실행 환경 ‘오픈쉘’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이런 접근법은 전형적인 ‘하드웨어 벤더’의 역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오픈클로 생태계가 확장될수록 그를 구동하는 고성능 AI 칩에 대한 수요는 자연스레 엔비디아 플랫폼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젠슨 황 CEO의 발언은 이를 암시하는데요, 그는 모든 기업이 에이전트 시스템 전략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픈클로가 그 중심에 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공급망 재편: 삼성과의 새로운 동맹
엔비디아의 야심찬 전략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첨단적인 생산 공급망이 필수적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랜 기간 TSMC에 의존해오던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세대 그록 3 LPU를 삼성의 4나노 공정에서 생산하기로 한 것은 그 시작입니다. 이는 단순한 제조처 분산이 아니라, HBM이라는 핵심 메모리 반도체의 안정적 수급을 담보로 한 전략적 ‘번들 계약’의 성격이 강합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 파운드리와 최고성능 HBM 생산 능력을 동시에 보유한 기업입니다. 엔비디아로서는 AI 반도체 성능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자 HBM 확보가 급선무인데, 삼성과의 파운드리 계약을 통해 이를 안정화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는 거죠. 이 협력은 엔비디아의 2028년 출시 예정인 차기 ‘파인만’ 시리즈 AI 반도체의 LPU 생산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의 에이전틱 AI 전략은 하드웨어 설계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 그리고 공급망 다각화라는 삼각 프레임 위에 세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