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화된 규정, 무거워진 부담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철강, 알루미늄, 구리 함량이 높은 완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습니다.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서명된 포고령에 따르면, 기존에 제품 내 금속 함량 비율에 따라 최대 50%를 부과하던 복잡한 방식을 폐지하고, 금속 함량이 중량의 15%를 초과하는 제품에는 완제품 전체 가격의 25%를 일괄적으로 관세로 매기기로 했습니다. 이 새 규정은 4월 6일부터 즉시 적용됩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기존 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비효율적이었다며, 이번 변경을 통해 미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는 50% 품목관세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밝혔죠.
당연히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청와대는 즉시 영향을 점검하며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고,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업계 간담회를 소집해 구체적 제도 변경 사항을 설명하고 애로사항을 듣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함량가치 계산 의무가 사라져 전반적 행정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 낙관하는 반면, 25% 관세가 적용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내놓고 있습니다.
가전·전력기기, 현지 생산 가속화 불가피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분야는 가전과 전력기기 산업입니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 대형 가전은 철강 사용 비중이 높아 대부분 새 관세 적용 대상이 될 겁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처럼 미국 내 점유율이 높은 대기업은 단기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이미 낮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가전 사업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미국 내 경쟁사들도 해외산 부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가격 인상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 호황으로 북미 시장에서 선전하던 국내 전력기기 업계도 발빠른 대응에 나섰습니다. 대형 변압기 등 금속 비중이 높은 제품의 관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주에 제2공장을 세우고 있고, 효성중공업은 테네시주의 생산기지 증설을 추진 중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한 현지 생산 확대, 즉 '온쇼어링' 가속화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죠.
의약품은 15% 차등 적용, 그러나 불안한 미래
같은 날 발표된 또 하나의 충격은 의약품 관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특허 의약품 및 원료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령에도 서명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에 속해 해당 의약품에 대해서는 15%의 차등 관세율을 적용받게 됩니다. 미국 보건복지부와 상무부와 각각 특별 가격 협정이나 온쇼어링 협약을 체결하면 무관세 혜택도 받을 수 있어, 한국 제약사들의 직접적 타격은 일부 완화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불안요소도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관세에서 제외된 복제약(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1년 후 재평가를 통해 관세 부과 여부가 결정될 예정입니다. 또한, 자동차 산업은 이미 15% 관세 적용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부품 수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고, 반도체와 조선 업계도 향후 공급망 재편 리스크와 원가 상승 압박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번 일련의 조치들은 단순한 관세 인상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 자체를 미국 내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읽힙니다. 한국 기업들에게는 원가 관리와 현지 생산 전략의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