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의 한마디가 불러온 잔물결
최근 AI(인공지능) 관련 주식 시장이 다시 술렁이고 있습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AI 사업의 매출 전망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데 이어, CEO가 AI 부문의 마진이 다른 사업보다 낮다는 점을 언급했는데요. 이 발언은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냈습니다. 브로드컴 주가는 하루 만에 11% 넘게 폭락했고, 이는 엔비디아, AMD, 마이크론 등 다른 AI 및 반도체 관련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오라클 역시 그 직전에 낮은 매출 성장률을 발표하며 투자자들의 실망을 샀습니다. 결국, 기술주의 추락으로 뉴욕증시 3대 지수, 특히 나스닥이 1.69%나 크게 하락하며 연말 '산타 랠리'에 대한 기대를 흐려놓았습니다.
이번 움직임은 단순한 주가 조정을 넘어, AI에 대한 투자 열기가 과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지난 11월에도 유사한 AI 회의론이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의 시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번과 다른 이번 AI 비관론의 정체
지난달 AI 버블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신용경색과 유동성 위험에 대한 우려가 중심이었습니다. 단기 자금시장이 꽉 막히면서 고위험 자산인 기술주에서 자금이 빠져나갈까 봐 걱정이 컸죠.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다릅니다. 미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신용 스프레드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업의 '실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점입니다. 브로드컴과 오라클은 사업은 잘 하고 있지만, 시장이 바라던 폭발적인 AI 수익 성장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겁니다. IM증권의 분석처럼, 실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AI 투자의 수익성을 당장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죠.
이러한 우려는 시장이 AI를 단기 실적 주도가 아닌 장기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기대치가 높아져 조금의 실망도 크게 받아들여지는 구조이기도 하죠. 결국 투자자들은 AI의 가능성은 믿지만, 그 가능성에 지불한 주가가 합리적인지 다시 한 번 따져보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버블보다 더 무서운 '트리플 약세' 그림자
전문가들이 현재 더 주목하는 것은 AI 버블 자체보다는 다른 곳에서 오는 리스크입니다. 바로 장기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에요.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를 여지가 있습니다. 핵심은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의 움직임이에요. 이 두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강한 긴축 정책, 즉 '매파적' 입장을 보일 경우, 전 세계적으로 장기 금리가 다시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장기 금리 상승은 '트리플 약세'라는 복합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달러 가치가 강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원화 약세), 이는 국내 물가를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하며(물가 상승), 결국 국내 금융시장의 자금이 빠져나가 주식과 채권 가격이 함께 떨어지는(주식·채권 약세) 악순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원·달러 환율은 미국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오르는 '역주행' 현상을 보이면서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연말 시장, 조정인가 반전의 신호인가
시장은 이제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한쪽은 AI 버블 논란으로 인한 기술주의 조정이 연말 장을 흔들며 단기 하락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이고, 다른 한쪽은 이번 조정이 건강한 기대치 재정립 과정이며, 장기 금리 상승이라는 더 큰 위험에 대한 경고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나리오입니다.
다가오는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회의 결과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입니다. 그들의 발언 한마디가 글로벌 자본의 흐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AI 조정을 이유로 국내 반도체주를 대량 매도하는 11월의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시장은 화려한 AI 이야기에서 한 걸음 물러나, 금리와 환율이라는 고전적이지만 확실한 위험 요인을 다시 마주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