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앞 집회와 혐오 확산…극단적 진영 대립이 낳은 사회적 갈등

MM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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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정 · 2025년 12월 5일 오전 12:53

발행: 2025년 12월 5일 오전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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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가 지속되는 가운데, 혐오 정서와 극단적 진영 대립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치권 일부 인사의 발언이 음모론 확산에 기여했으며, 이는 온라인과 거리에서 혐오를 통한 정치적 결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회 문화는 상대에 대한 조롱과 멸시로 변질되어 폭력 우려까지 낳고 있으며, 극단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견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끊이지 않는 선관위 앞 집회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시위대가 ‘부정선거는 내란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중국의 개입 가능성까지 제기했습니다. 선관위 건물 앞에는 ‘부정선거 즉각 수사’라는 현수막이 걸린 천막이 설치된 상태입니다. 이러한 집회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극한적 진영 대립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모론의 불씨는 정치권 고위 인사들의 발언에서 비롯됐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거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 것을 시작으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중국의 영향력 공작을 언급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후 일부 인사들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마저 특정 후보의 당선을 의심한다는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관련 콘텐츠 제작자를 ‘선생님’이라고 칭한 사실은 이들 음모론이 정치적 지지를 받으며 확산되는 배경이 됐습니다.

혐오를 통한 정체성 확보와 정치적 결집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불만 표출을 넘어, 혐오를 매개로 한 정치적 결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와 ‘반중(反中)’ 감정은 일부 세력에게 빈약한 정체성을 채워주는 도구가 됐습니다. 그들은 ‘윤 어게인’을 외치며 세력을 규합하고, 서울 명동과 대림동, 경기 안산과 수원 등에서 혐오 현수막을 내걸고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대림동 등에서는 중국인을 향한 노골적인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편, 과거 혐오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단체들도 후원금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지지 기반을 확대 중이며, 특정 정치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민주주의적 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진영 논리에 갇힌 집회 문화의 변질

비상계엄 1주년을 맞은 현재, 사회의 갈등은 ‘청산’을 넘어 상대에 대한 ‘멸시’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이는 집회 문화의 극단적 변질에서도 드러납니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매일 열리는 집회는 명확한 주장보다는 상대 진영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서로의 집회장 근처에서 스피커 음량을 극대화해 상대를 압도하려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인근 상인들과 일반 시민들은 큰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혐오와 멸시의 정서가 폭력으로 표출될 위험성입니다. 집회 현장을 지나가는 일반인이 봉변을 당하거나,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이미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상대 세력을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이러한 태도가 과거 전체주의로 흐른 역사적 사례와 유사하다며 경고합니다.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과제

이러한 극한 대립과 혐오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전한 공론장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집회 문화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설득하는 공간이 아니라, 적대감을 확인하고 증폭시키는 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집회 장소의 중복 사용을 제한하는 등 집시법 개정을 통한 견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궁극적으로는 정치 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대를 적대시하고 멸시하는 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결과만을 낳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큰 상처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과 합리적 논의를 통한 사회적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