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차 강행군, 산업계와 충돌 조짐
정부가 2030년까지 국내 신차 판매의 절반을 전기차와 수소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보조금과 충전소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일 발표된 ‘2026년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올해만 수소차 7820대 보급에 5762억 원을 지원하고, 수소충전소도 누적 500기 이상 구축에 1897억 원을 투입한다. 전기차 역시 구매 보조금을 유지하며 보급 확대를 도모한다. 하지만 이 같은 강력한 정책이 자동차 산업계와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무공해차 비중을 50%로 높이기 위해 단계적 목표를 설정했다. 2026년 28%, 2027년 32%, 2028년 36%, 2029년 43%로 점진적으로 상향한다. 목표 미달 시 제조·수입사에 기여금을 부과하고, 구매 보조금도 축소하는 등 강제력을 뒷받침한다. 이른바 ‘규제’와 ‘지원’을 동시에 가하는 ‘채찍과 당근’ 전략이다.
업계 부담·국제 흐름과 괴리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국내 신차 중 전기차와 수소차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 5년 만에 50%로 끌어올리려면 연평균 7%포인트 이상 상승해야 한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올해 목표 달성이 어려워 최대 1300억 원의 기여금을 낼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업계는 “너무 급격한 전환이 산업 생태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국제적 흐름도 상반된다. 미국과 유럽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고 내연차와의 공존을 모색 중이다. 미국은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했고, EU는 2035년 내연차 판매 금지를 유예하는 등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오히려 목표를 상향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과속’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친환경 전환은 필요하지만 속도 조절과 지원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프라 확대와 보조금 지원은 긍정적
정부는 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해 보조금을 지속 지원하고 충전소를 확충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수소 승용차 국고보조금은 2250만 원을 유지하며, 지자체 보조금까지 합하면 최대 4000만 원에 육박한다. 수소충전소도 올해 500기 이상 구축을 목표로 하고, 이동식 충전소 시범사업도 추진해 보급 저조 지역의 접근성을 높인다.
수소차 보급 실적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수소차 보급량은 전년 대비 182% 증가한 6903대였고, 특히 승용차는 210% 증가했다. 현대차 넥쏘가 주도하고, 수소 트럭·버스 등 상용차로 확장되며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제주도는 민간 수소 승용차 보급 확대를 위해 지방보조금을 1700만 원으로 확정하고, 서귀포시에 수소충전소를 구축하는 등 지역 차원에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망과 과제
정부의 강력한 목표는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제적 약속에서 비롯됐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40% 감축) 달성을 위해서는 수송 부문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고, 충분한 인프라와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는 정책이 함께해야 한다. 하이브리드차 판매 실적을 일부 인정하고, 초과 실적 이월을 허용하는 등 유연성은 있지만, 여전히 목표치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앞으로 정부는 업계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조정하고, 글로벌 추세를 반영한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동시에 충전 인프라 확충과 보조금 지원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당근’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2030년까지 50%라는 목표가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무리 없이 달성될 수 있을지, 정부의 정책 기조가 진화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