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잔치'에도 얼어붙은 증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역대 최대 실적을 내놨는데, 정작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10월 30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48% 떨어진 5730.74에 마감했고, 코스닥도 3.83% 하락한 724.38로 장을 마쳤습니다. 장중 5600선이 무너지며 11거래일 만에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됐습니다.
삼성전자는 3.02% 내린 22만5000원, SK하이닉스는 7.08% 급락한 141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중 한때 SK하이닉스는 9%대까지 밀리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6000억원 안팎을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이끌었고, 연기금은 8900억원대 순매수로 방어에 나섰습니다.
방아쇠는 미국발 AI 회의론
직접적인 방아쇠는 대서양 건너에서 날아왔습니다. 간밤 뉴욕증시에서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12.64% 폭락한 겁니다. 3분기 매출이 시장 기대를 밑돈 데다 잉여현금흐름이 상장 이후 처음으로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AI 투자 부담이 부각됐습니다.
아마존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AWS 매출은 전년 대비 39% 늘었지만 전체 매출은 전망치를 밑돌았고, 최근 1년간 번 현금보다 데이터센터 투자금이 424억 달러 더 많았습니다. 인텔 역시 4분기 전망이 기대에 못 미쳐 시간외에서 20% 넘게 급락했습니다.
문제는 이들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HBM과 서버용 D램의 핵심 수요처라는 점입니다. 투자 회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 반도체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 증시를 강타한 셈입니다.
실적과 주가가 엇갈린 이유
흥미로운 건 반도체 기업들의 펀더멘털 자체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점입니다. SK하이닉스는 14개 주요 고객과 장기 공급계약을 맺어 2027~2028년 생산능력의 절반 이상을 확보했고, 2029년까지 D램과 HBM 물량이 사실상 완판됐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도 10개 대형 고객과 다년 계약을 체결하며 HBM 공급 물량을 이미 소진한 상태입니다. 이에 하나증권과 SK증권은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7년 영업이익 전망을 20%, 12% 높여 잡았습니다.
결국 이번 급락은 실적 악화가 아니라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만든 밸류에이션 조정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삼성증권은 급격한 조정으로 밸류 부담이 완화돼 펀더멘털이 견조한 종목의 중장기 매력이 커졌다고 봤습니다. 반면 현대차증권은 빅테크가 현금 흐름이 바닥날 때까지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신중한 접근을 권했습니다.
당분간 증시는 AI 투자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출렁일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 증시 거래대금은 이달 들어 5월 고점 대비 70%가량 줄며 수급 여건도 녹록지 않습니다. 여기에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와 AMD 실적 발표 등 굵직한 일정이 대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