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공표가 만든 반전
한국거래소가 저PBR 상장사 151곳을 공표한 뒤 예상 밖의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명단에 오른 151곳 가운데 113곳의 주가가 오히려 상승한 겁니다. '저평가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저가 매수 신호로 읽힌 셈인데요. 최근 6개 반기 동안 코스피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머문 기업이 대상이며, 해당 종목에는 내년 5월까지 거래시스템에 저PBR 표시가 붙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거래소가 지난 3월 내놓은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의 핵심 수단입니다. 주가를 방치하거나 누르는 기업의 이름을 공개해 압박하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 방식으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수익성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죠.
오너 일가의 셈법
그런데 명단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6월 말 기준 오너 일가가 개인 지분을 직접 보유한 곳이 101곳으로 전체의 66.9%입니다. 이 중 57곳은 오너 대주주가 65세 이상, 15곳은 80세 이상인데요. 승계를 앞둔 기업일수록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LX홀딩스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구본준 회장이 장남에게 보통주 991만5000주를 두 차례 증여했는데, 1차 증여분 평가 기준 주가는 7887원으로 주당 순자산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증여세는 460억원 안팎으로 추산됩니다. 주가가 낮을수록 상속·증여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에서, 개선계획을 내지 않아도 제재가 없는 현 상황이라면 주가를 끌어올릴 이유가 크지 않다는 겁니다.
산업 특수성은 어디에
제약바이오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헬스케어 종목 18곳이 명단에 올랐는데 PBR 단순 평균은 0.37배에 그칩니다. 문제는 지주사 구조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약품 판매는 자회사가 맡고 지주사가 사옥과 연구개발 부담을 떠안는 구조에서 PBR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죠. 오랜 기간 이익을 쌓아 순자산이 큰 전통 제약사가, 이익이 없어도 높은 PBR을 받는 신약개발 바이오텍과 같은 줄에 섰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명단 공표가 민망함을 유도하는 데 그칠 뿐이라며 근원은 상속·증여세라고 짚었습니다. 정부안은 13개 반기 중 12개 반기 업종 하위권에 머문 기업을 대상으로 삼지만 적용 대상이 225곳 중 107곳에 그칩니다. 업종과 기간을 가리지 않고 PBR 0.8배를 기준으로 삼자는 국회안이 더 실효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