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쓴 포스트시즌 전승
2025-2026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이 4월 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정규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 문턱에 섰던 GS칼텍스가 한국도로공사를 세트 스코어 3대1로 꺾으며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이번 우승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6경기 전승, 즉 포스트시즌 무패 우승이라는 V리그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죠. 지난 2020-2021 시즌 이후 5년 만에 정상에 오른 GS칼텍스는 ‘3위 팀의 봄배구 전승’이라는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승리의 중심에는 외국인 선수 지젤 실바가 있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챔피언결정전 3경기에서 모두 30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만장일치로 챔프전 MVP에 선정되었죠. 하지만 실바 한 명의 힘만으로 이룬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권민지와 오세연이 각각 15득점, 11득점 7블로킹으로 득점과 수비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세터 안혜진의 안정적인 볼 배급이 팀의 공격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이영택 감독은 우승 후 “선수들의 체력적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몰빵 배구’에서 ‘하이브리드 배구’로의 진화
GS칼텍스의 우승을 ‘실바 한 명이 이끈 승리’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실바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몰빵 배구’에 대한 비판도 있었죠. 하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팀은 확실히 변했습니다. 이영택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실바의 체력 부담을 덜고 상대 수비의 집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하이브리드 배구’ 전략을 완성해 갔습니다. 실바의 옆에서 권민지, 유서연, 최가은 등 국내 선수들의 득점력이 더해지면서 팀은 다각화된 공격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죠.
이러한 변화는 결코 쉽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영택 감독은 2024년 3월 지휘봉을 잡은 후 팀 리빌딩을 시작했지만, 첫 시즌 부상 악재와 14연패라는 침체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했고, 실바와 아시아쿼터 레이나를 영입해 전력의 기본 틀을 마련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는 ‘오빠 리더십’ 아래, 팀은 서서히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죠. 한 관계자는 “모든 포지션이 제 몫을 해주면서 ‘몰빵 배구’가 완성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우승은 단순한 스타 플레이어의 힘이 아니라, 체계적인 팀 빌딩과 전략적 진화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승리와 패배를 가른 조직력의 차이
우승팀의 기쁨이 있는 반면, 패배팀의 아쉬움도 컸습니다. 정규시즌 내내 압도적인 1위를 달리며 최대 우승 후보로 꼽혔던 한국도로공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패를 당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졌습니다. 패배의 원인으로 가장 크게 지목되는 것은 챔피언결정전 직전 김종민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 사태였습니다. 구단은 김 감독의 A코치 폭행 혐의를 이유로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했는데요, 약식 기소된 비교적 경미한 혐의로 최중요 시리즈 직전 감독을 교체한 결정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결정은 선수단에 즉각적인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김영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선수들의 멘탈은 이미 흔들린 상태였죠. 김 감독 대행은 “선수들이 힘들어했고, 자신도 6kg이나 체중이 빠졌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경기에서도 두드러진 전술 변화나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공격 성공률에서 GS칼텍스에 크게 밀렸습니다. 경기 후 김영래 감독 대행은 “내가 많이 부족했다”며 책임을 통감했고, 감독 부재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사건은 최고의 전력을 가진 팀이라도 조직의 안정성과 리더십이 무너지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GS칼텍스의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끈기 있게 팀을 구축하고 전략을 발전시킨 팀과, 외부적인 악재에 휘청인 팀의 대조적인 모습은 스포츠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 운영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팬들은 5년 만에 찾아온 GS칼텍스의 봄을 축하하며, 다음 시즌 더욱 치열해질 여자배구 리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