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페이지가 좌우하는 쇼핑의 미학
온라인 쇼핑할 때 상품 목록의 첫 화면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실험 연구 결과, 소비자의 94.6%가 검색 결과 첫 페이지 안에서 구매를 마쳤고, 절반 이상인 51.7%는 상위 5개 상품 안에서 선택했습니다. 가격 비교나 다음 페이지 탐색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셈인데요. 정렬 순서를 직접 바꾼 소비자는 25.2%에 불과했고, 필터 기능을 아예 쓰지 않은 비율은 83.8%에 달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플랫폼이 제시하는 기본 순위를 상품의 품질이나 적합성을 반영한 객관적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이런 신뢰를 이용하면 소비자의 선택은 쉽게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이 비싸도 순위가 올라가면 팔립니다
공정위는 가상 쇼핑몰을 직접 만들어 소비자 3,072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통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비타민C, 롤 화장지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연구진은 품질은 같지만 가격이 10% 더 비싼 상품을 검색 상단에 배치해 봤는데요. 결과적으로 해당 상품의 구매율은 기존 1%에서 35%로 약 34%포인트 급증했습니다. 반대로 원래 상위권이던 경쟁 상품은 순위가 밀리면서 구매율이 52%에서 20%로 하락했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순위 조작만으로도 플랫폼의 의도가 소비자의 지갑으로 직결된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가격을 감수하면서도 상위 노출 제품을 선택했고, 심지어 구매 후에도 플랫폼 순위를 더 신뢰하는 경향까지 보였습니다.
라벨과 공시는 왜 통하지 않았을까
이런 왜곡을 줄이기 위해 플랫폼이 자사 상품임을 알리는 라벨을 붙이거나 정렬 기준을 공시하는 방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기대와 달랐는데요. 자사 우대 라벨은 오히려 플랫폼의 품질 보증으로 오인돼 구매율을 4.5%포인트 더 끌어올렸고, 정렬 기준 공시는 확인한 소비자가 10.7%에 그쳤습니다. 공시를 본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구매율이 내려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보 제공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물론 알고리즘이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건 맞습니다. 다만 플랫폼이 이를 자사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할 경우, 소비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기회를 빼앗기게 됩니다. 공정위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단순 고지를 넘어 독립된 제3자가 정기적으로 검증하는 알고리즘 감사 제도 같은 근본적인 구조적 규제를 제언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장에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지키려면 투명한 순위 공개와 함께 실효성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