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날에 드러난 국가인권위원회의 심각한 내부 갈등과 신뢰 위기

K한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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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정 · 2025년 12월 11일 오전 2:17

발행: 2025년 12월 10일 오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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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인권의 날,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인권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기념식 참석에 실패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인권위 내부 직원의 77%가 사퇴를 원하는 가운데, 전직 위원장 36명도 집단적으로 퇴진을 요구하며 조직의 심각한 위기를 지적했다. 감사원은 김용원 상임위원을 정치 중립 위반으로 고발했으나, 논란의 ‘윤석열 방어권 안건’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인권위의 독립성과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적 개혁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기념식장이 아수라장이 된 날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인권의 날’이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에게는 가장 뜨거운 비판의 날이었습니다. 위원장이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퇴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결국 안 위원장은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고, 지지 단체와 항의 단체의 대치 속에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인권의 날 행사에서 인권위원장의 참석이 저지된 것은 전례가 없는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이 같은 극한의 대립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안창호 위원장은 취임 이후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 논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입장, 과거 비상계엄 옹호론 등으로 꾸준히 진보 진영의 강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을 의결하며 인권위가 오히려 권력자의 권익 보호에 나섰다는 비판까지 더해졌죠. 인권의 날 항의는 이러한 불신과 반감이 폭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직원 77%가 바라는 것

외부의 거센 비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인권위 내부의 분열입니다. 최근 진행된 내부 설문조사에서 응답 직원의 77.4%가 안창호 위원장의 사퇴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원들은 공개 게시판에 실명으로 사퇴 요구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이는 단순한 불만을 넘어 조직의 사기와 운영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직 인권위원장 36명이 한목소리로 내린 진단은 더욱 무겁습니다. 이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위가 ‘방향 잃은 난파선’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안 위원장의 즉각적인 사퇴와 인권위법 전면 개정을 통한 근본적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인권위의 창립 멤버들이 집단적으로 현직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들은 인권위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마지막 보루라는 본래의 역할을 상실하고, 오히려 혐오와 차별을 방치하거나 권력을 옹호하는 ‘반인권적’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제재와 남아있는 쟁점

논란의 불씨는 위원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원은 김용원 상임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헌법재판소를 부숴야 한다’는 등 극단적인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시에 안창호 위원장에게는 소속 위원의 위법 행위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주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은 가장 논란이 된 ‘윤석열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 자체에 대해서는 판단 권한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는 해당 안건의 발의 및 의결 과정이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벗어난 사안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해당 안건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은 법적, 제도적 판단을 기다리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흔들리는 독립성, 향후 개혁의 방향

현재의 위기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권위는 설립 취지대로 모든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며,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기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정치적 성향에 따른 내부 갈등과 외부의 불신으로 그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논의는 이미 국회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위원장 및 상임위원에 대한 탄핵소추 규정을 신설하고, 위원 후보를 추천하는 독립위원회를 구성하며, 위원장 임명에 국회 동의 절차를 도입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인권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사 시스템과 견제 장치를 강화해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안창호 위원장은 모든 비판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인권위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 직원의 상당수와 인권 운동의 핵심 세력, 전임자들까지 등을 돌린 상황에서 그의 리더십으로 인권위의 신뢰 회복과 기능 정상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인권의 날을 맞아 드러난 이 심각한 갈등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가 인권을 수호할 기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