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도시를 덮는 숲의 그늘
폭염이 일상이 된 지금, 도시의 나무 그늘은 쉼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나무의 잎과 가지가 빽빽하게 어우러진 '숲 지붕'이 화두에 오르고 있는데요. 이는 단순한 녹지 면적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입니다. 마치 천장처럼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의 무성한 상부를 말하며, 도심의 열기를 식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뉴욕시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란 맘다니 시장은 도시 숲 계획을 통해 현재 23.4%인 숲 지붕 비율을 2040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보존과 식재, 그리고 관리자 양성에 집중하며 폭염 시대를 대비하는 모습인데요. 유럽연합 환경국 역시 숲 지붕을 30%까지 확대하면 열섬현상으로 인한 사망자를 4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숲 지붕이 주는 구체적인 건강 이점
숲 지붕의 효과는 공기 중 먼지를 걸러내고 온도를 낮추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산림청 산림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로수가 무성한 보행로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기온이 평균 3도 낮았고, 표면 온도는 최대 10도에서 2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미세먼지는 30% 이상, 초미세먼지는 15% 이상 줄어들어 심혈관 및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도 확인됐습니다.
올해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서는 더 뚜렷한 연관성이 제시됐습니다. 나무 그늘이 1% 늘 때마다 사망률이 1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그늘이 단순한 쾌적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도시 인프라임을 보여주는 데이터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새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숲 지붕을 보존하는 것이 훨씬 큰 이점을 제공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그늘 보행권, 이제는 구체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서울시는 지난 19일 '그늘 보행권'을 도시 정책의 기본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의미 있는 출발점인 건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통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그늘권을 확보하려면 숲 지붕을 단순한 녹화 개념이 아닌 도시의 핵심 지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도시에서는 기존 숲 지붕이 파괴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획일적인 강전정으로 인한 '닭발 가로수' 양산,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두베기 등이 대표적인데요. 공공 도로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와 같은 사유지의 나무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없다 보니 숲 지붕은 점점 얇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공간마다 얼마나 많은 숲 지붕이 필요한지 계량적인 목표를 세우고, 기존 나무들부터 제대로 지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