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헤비메탈 전설 백두산 원년 멤버 한춘근 별세, 록 음악사에 남긴 발자취

네조
2개의 관련 기사

7달 전 수정 · 2026년 4월 3일 오전 9:49

발행: 2026년 4월 3일 오전 9:49

요약 생성중...

한국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원년 멤버 한춘근 씨가 71세로 별세했다. 1986년 데뷔한 백두산은 '기억의 습지', '킹 오브 록큰롤' 등으로 80년대 헤비메탈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한춘근 씨의 파워풀한 드럼 연주는 한국 록 역사의 명연주로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 인생은 군사정권기 한국 록의 도전과 성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록이자 유산이다.

전성기의 심장이 멈추다

한국 헤비메탈의 전성기를 함께 이끈 전설적인 밴드 ‘백두산’의 원년 멤버 한춘근 씨가 향년 71세로 별세했습니다. 4월 3일 오전 1시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소식은 1980년대 록 음악을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을 전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기타리스트이자 드러머로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는 한 개인이 밴드 내에서 다중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그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발인은 4월 3일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한춘근 씨의 별세는 한국 록 음악사에서 하나의 시대적 장막이 내려앉음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1955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대 초반 ‘Young Ace(영에이스)’라는 밴드의 드러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7인조 그룹 ‘라스트 찬스’를 거치며 파워풀한 드럼 연주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1986년 유현상, 김도균, 김창식과 함께 ‘백두산’을 결성하며 본격적인 헤비메탈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의 음악 인생은 한국 대중음악이 군사정권의 통제 아래에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나간 생생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백두산과 한국 헤비메탈의 빛

백두산은 1986년 첫 앨범 ‘기억의 습지’를 발표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한국의 음악 시장은 발라드와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상황이었는데요, 백두산이 선보인 강력한 기타 리프와 격정적인 보컬, 폭발적인 드럼 비트는 청년들에게 충격이자 해방감을 선사했습니다. 이어 1987년 2집 ‘킹 오브 록큰롤’을 발매하며 ‘어둠 속의 낙원’, ‘불멸의 전설’, ‘Up In The Sky’ 같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특히 2집 앨범에 담긴 한춘근 씨의 드럼 연주는 ‘한국 록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연주’로 회자될 만큼 기술적 완성도와 에너지가 압도적이었습니다. 동료 김도균은 그를 두고 “연주의 최고 경지에 오른 분”, “한국 드럼의 최고봉”이라고 회고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미8군 무대와 명동의 밤무대에서 오랜 시간 무명으로 실력을 쌓았고, 서라벌레코드 연습실에서 매일같이 연습하며 그만의 독특한 터치와 타이밍을 완성해나갔습니다. 백두산은 2집 발매 후 해체됐다가 1992년 재결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국 헤비메탈의 상징으로서의 위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남겨진 울림과 유산

한춘근 씨는 백두산 활동 이후에도 꾸준히 음악가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2011년에는 드럼 솔로 음반 ‘백두대간’을 발표하며 여전한 열정과 기량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이 앨범은 그가 평생 갈고닦은 드럼 연주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작별 소식에 록 팬들과 후배 음악인들은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추모의 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록의 역사는 한춘근과 같은 음악가들의 끈질긴 실험정신과 도전 위에 세워졌습니다. 1980년대 당시 헤비메탈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억압된 시대정서를 격렬하게 표출하는 통로이자 청년 정체성의 한 축이었습니다. 백두산의 음악이 지닌 거칠고 강렬한 에너지는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켰죠.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을 마감함과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이 격동의 80년대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음반과 영상으로 남아, 앞으로도 새로운 세대에게 한국 헤비메탈의 원점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