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실 뺑뺑이'
지난달 부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14개 병원에서 잇따라 수용을 거절당한 끝에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경련 증상을 보인 이 학생은 119 구급대에 의해 '긴급' 등급으로 분류되었음에도 해운대백병원, 동아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주요 병원들이 '소아 중환 수용 불가', '소아 신경과 진료 불가'를 이유로 문을 닫았습니다. 결국 1시간 18분 동안 이어진 수색 끝에 15번째 병원에서 받아줬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병원 도착 직후 사망했습니다.
의료 현장의 냉엄한 현실
이 사건은 단순한 의료 사고를 넘어 시스템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부산 지역 주요 병원들의 응급실 현황을 분석해보면 소아과와 외과 등 필수 진료과목에서 의료진 부족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인제대 부산백병원과 고신대복음병원에서는 소아과 환자 진료가 제한되고, 100일 미만 신생아는 아예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한 '방어 진료'가 만연하면서 중증 환자조차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의료계, 팽팽한 해법 차이
이런 위기 상황에 정치권과 의료계의 해법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을 발의해 119 구급대가 이송 병원을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대한응급의학회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제한된 응급의료기관에 구급차가 몰려 대기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의료계는 오히려 배후 진료과의 상시 운영 체계 구축과 응급실 전문 인력 확충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과제
현행 응급의료법은 구급대가 병원의 수용 능력을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조항이 오히려 병원의 '수용 거부'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구급대원이 환자 수용을 20번 이상 문의한 출동이 한 해 1,176건에 달합니다.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부산대병원의 복귀율이 64%에 그치는 등 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복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병원도 있어 지역 의료 시스템의 공백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총리실은 응급환자 이송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가동했고, 국회에서는 관련 법률 개정안이 논의 중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 인력 확보부터 지역별 의료 환경 개선, 의료기관 간 협력 체계 강화까지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14번의 거절 끝에 잃어버린 한 생명이 우리 의료 시스템에 던지는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