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번호만 붙은 무덤
스페인령 세우타의 이슬람 공동묘지에서 지난 8월 21일, 남성 이민자 18명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이들은 한 달 전 국경을 넘으려다 숨진 사람들인데, 이름 대신 무덤에 식별번호만 새겨졌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유족이 찾아올 경우를 대비한 조치지만, 그 번호 뒤에 숨은 비극은 결코 단순한 행정 절차로 정리될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월 30일에 발생했습니다. 약 8만 명의 이민자가 모로코에서 아프리카 최북단 도시 세우타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는데요. 국경검문소 인근 방파제를 넘으려는 과정에서 익사와 압사가 잇따라 총 9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우타에서 82명, 모로코에서 14명이 사망했고,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모로코인 남성 6명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0명은 여전히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시신 둘러싼 양국 갈등
장례 절차가 시작되면서 인권 단체와 지자체 간의 공방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모로코인권협회는 유해를 송환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며 추가 매장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반면 세우타 자치정부는 이러한 비판에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요. 시신을 모로코로 옮기는 데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쳤으나, 모로코 정부 측에서 인계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매장을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묘지 관리인은 앞으로 매일 10~12구씩 총 70여 구를 추가로 묻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리되지 않는 국경의 현실
사망자들의 장례가 시작된 가운데, 살아남은 이민자들의 상황도 여전히 열악합니다. 현재 세우타에는 수천 명이 판잣집을 세워 생활하고 있는데, 스페인 정부가 임시 보호소를 마련하고 트람폴린 해변을 정리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정부 시설로 옮겼다가 모로코로 추방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결국 보호소를 떠나 다시 판잣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는 다른 문제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을 스페인 본토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거액을 요구하는 밀입국 브로커들이 활개 치고 있는 것인데, 스페인 경찰은 본토까지 배를 태워주는 대가로 8천유로를 요구한 브로커 5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름 없는 무덤이 늘어가는 동안, 세우타의 국경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절망과 죽은 사람들의 미완된 정체성이 뒤엉킨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