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계 큰 별, 전유성, 유쾌한 유산 남기고 영면하다
한국 코미디계의 큰 별이자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선구자, 전유성 님이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폐기흉 증세 악화로 투병해 온 전유성 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는 소식에 많은 동료와 후배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그맨’ 용어부터 ‘개그콘서트’까지…한국 코미디 새 지평 열다
전유성 님은 1970년대 방송작가로 데뷔한 이래, 단순한 코미디언을 넘어 한국 코미디의 지형도를 바꾼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렸으며,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통해 독창적인 웃음 코드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개그콘서트’의 창립 멤버로서 후배 양성에도 힘썼으며, 대학로에는 한국 최초의 코미디 전용 극장 ‘철가방 극장’을 설립하여 후배들의 무대를 지원했습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명예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 코미디의 외연을 넓히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코미디는 슬랩스틱을 넘어선 ‘지적인 개그’, ‘슬로우 개그’ 등으로 불리며, 단순한 웃음 제공을 넘어선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들은 한국 코미디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웃지마, 너도 곧 와”…마지막까지 유머 잃지 않은 삶
전유성 님의 삶은 마지막까지도 유머와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생전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웃지마, 너도 곧 와”라고 새겨달라는 유언을 남겨,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과 함께 인생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는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희극인장’으로 장례를 치러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별세 직전 병상에서도 농담을 건네며 동료들을 안심시켰다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인사 역시 화제를 모았습니다. “재미난 세상, 마치겠습니다”라는 말은 그가 얼마나 삶과 무대를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고별사이자, 그의 열정적인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인생의 나침반’ 김신영, 스승 곁 지키며 눈물 속 애도
제자이자 ‘개그 인생의 나침반’으로 불렸던 코미디언 김신영은 전유성 님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김신영은 전유성 님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 ‘어른 교수님’이라 부르며 깊은 존경과 애정을 표했습니다. 힘든 시기마다 “한물 가면 두물, 세물 가서 보물이 된다”와 같은 격려와 조언으로 용기를 북돋아 준 스승에게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김신영은 병상에서 전유성 님과 함께 보낸 마지막 나흘을 “40년 인생 중 가장 진실되고 소중한 시간”이라 회상하며, 곁에서 발을 주무르고 게임을 함께 하는 등 정성껏 간호했습니다. 그녀는 전유성 님의 따뜻한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생에도 꼭 스승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습니다.
슬픔 속에도 빛난 유쾌함…코미디언 동료들의 추모
장례식장에서는 슬픔 속에서도 전유성 님을 기리는 유쾌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장의위원장 김학래를 비롯한 동료 코미디언들은 그의 유행어인 ‘숭구리당당’과 ‘봉이야~’를 외치며 고인을 추억했습니다. 특히 후배 김정렬이 ‘숭구리당당’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눈물과 함께 짧은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이수근, 추도사를 낭독한 이홍렬, 최양락 등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고인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전유성 님은 1969년 TBC 방송작가로 데뷔한 이후 50년 넘게 한국 코미디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웃음을 만드는 것을 넘어,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대한민국 코미디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비록 ‘재미난 세상’은 마무리되었지만, 그가 남긴 유머와 철학은 한국 코미디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