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생사를 노래한 마지막 가르침
근일 대종사가 눈을 감았습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영주 부석사 주지였던 현봉당 근일 대종사가 지난 11일 오전, 평생 주석하던 부석사에서 법랍 66년, 세수 87세의 일기로 원적에 들었습니다. "생과 사가 모두 텅 비었으니 두두물물이 묘법 아님이 없구나"라는 열반송을 남기며 수행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당연히 불교계는 깊은 애도에 잠겼습니다. 대종사의 빈소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에 마련되었고, 15일에는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이 엄수되어 전국 사부대중과 지역 인사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당대 최고 선지식들 아래 자란 수행자
근일 대종사는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1960년 은해사에서 도원 대율사를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이후 통도사 경봉스님, 해인사 성철스님, 묘관음사 향곡스님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들을 친견하며 수행의 기틀을 다졌는데요. 특히 성철스님으로부터 현봉, 구산스님으로부터 보륜이라는 이름을 받을 만큼 납자로서의 기개가 남달랐습니다.
사실 영천 묘각사에서 10년간 보임 정진을 한 경험은 대종사의 수행 세계를 더욱 깊게 만든 중요한 밑거름이었습니다. 이후 전국 제방선원을 두루 수선안거하며 참선 수행의 깊이를 더했고, 한국 선불교의 맥을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운사와 부석사를 일구어 낸 중흥의 주인공
대종사를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퇴락했던 가람을 일구어 낸 사찰 중흥의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1980년 고운사 주지로 부임한 뒤 고금당 선원을 개원하여 도량을 용맹정진의 장으로 일신했으며, 전국의 정진 납자와 재가불자들을 제접하며 경북 북부 불교의 중심을 세웠습니다.
반대로 1992년부터 35년간 주석한 영주 부석사에서는 천년 고찰의 승풍을 바로 세우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매월 철야 참선법회를 이끄는 등 선불교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재심호계위원을 역임하며 종단 행정에도 헌신했습니다.
개인에게는 철두철미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였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운 성품으로 후학을 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종사가 남긴 공덕은 앞으로도 한국불교를 이끌어갈 많은 제자들을 통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