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가 답일까?
정부와 여당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규제를 풀어주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목적은 온라인 배송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편의를 높이는 것이지만, 배경에는 쿠팡 등 강력한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견제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가 직접 새벽 시간대에 배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요. 이 규제가 사라진다면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도 밤 12시 이후 주문을 다음날 아침에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고위당정협의회가 이 문제를 논의했고, 일부 매장은 이미 법 개정에 대비해 물류센터에서 새벽배송을 위한 상품 분류 작업을 서두르는 모습도 포착되었죠.
하지만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장 큰 의문은 과거 10년간 지속된 경쟁력 하락의 근본 원인이 규제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규제만 풀린다면 진정한 반등이 가능할지에 관한 것입니다. 대형마트는 오랫동안 영업 시간, 휴무일, 배송 규제 등을 성장 정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해왔는데요. 반면 비판론자들은 규제를 방패 삼아 스스로의 혁신을 게을리했다고 지적합니다.
쇠퇴한 비식품, 변화한 소비 패턴
대형마트의 경쟁력 약화는 단순한 규제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비식품 매출의 지속적인 감소입니다. 의류, 가전, 생활용품 등 비식품 부문 매출은 2012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3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어요. 이 기간 동안 소비자들의 비식품 구매 채널은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형마트의 매출 구조는 식품, 그중에서도 신선식품에 크게 의존하도록 재편되었죠. 현재 대형마트 매출에서 식품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정부가 겨냥한 쿠팡의 강점이 신선식품보다는 바로 이 비식품 부문에 있다는 점입니다. 온라인 쇼핑 전체 시장에서 음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도 되지 않아요. 즉, 새벽배송 허용은 주력 매출이 아닌 부문에서, 이미 강점을 가진 상대와 맞서게 되는 ‘남의 술집’에서의 경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소비 패턴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소량 구매’와 ‘차 없는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대형마트의 교외 대형 매장과 대용량 판매 모델은 오히려 불리해졌죠. 이 틈을 편의점이 ‘집 앞 냉장고’ 역할로 빠르게 채워갔습니다.
진짜 과제는 혁신과 공존
그렇다면 대형마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지적은 단순한 규제 완화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합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규제와 무관하게 성장한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트레이더조는 온라인몰 없이도 프리미엄 식품과 차별화된 점포 경험으로 성공했고, 독일의 알디는 초저가 자체상표(PB) 상품으로, 일본 돈키호테는 독특한 매장 구성과 ‘찾는 재미’로 고객을 사로잡았죠. 이들은 규제를 탓하기보다 시장의 변화를 읽고 자신만의 강점을 확대했습니다.
새벽배송 허용 논의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골목상권의 반발입니다. 자정부터 오전 10시는 전통시장과 동네 슈퍼, 소상공인들이 신선식품을 공급하는 중요한 시간대예요. 규제 완화로 대형마트가 이 시간대에 진입하면 이들 상권에 큰 타격이 예상됩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골목상권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죠. 따라서 규제를 완화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골목상권 보호 방안과 새벽 시간대에 일하게 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 장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결국 단순한 규제 철폐가 아닌, 산업 구조 변화를 총체적으로 고려한 정책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