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 원 공약, 한 달 만에 공수표 되나
이원택 전북지사 당선인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내세웠던 '새만금 200조 원 반도체 투자 유치' 공약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유치해 글로벌 AI 반도체 중심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정부가 광주·전남과 충청권 등 다른 지역을 후보지로 검토하면서 전북 지역의 불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당·정·청 원팀'을 내세우며 이 공약을 적극 뒷받침했는데요. 선거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북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반도체 클러스터가 기울자 지역민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이원택 당선인이 전주·완주 통합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사실까지 더해지며 공약의 실효성을 두고 날 선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호남·충청으로 쏠리는 반도체 지도
정부는 수도권의 부지와 전력·용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에 짓는 방안을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습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용인 클러스터는 그대로 진행하면서 추가로 호남이나 충청 등에 새 단지를 조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는 단순한 이전이 아닌 AI 반도체 수요 폭증에 대응하는 추가 생산 거점 마련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문제는 이 결정이 기업의 자율적 판단보다 정치적 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이 짙다는 점입니다. 야당은 이재명 정부가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삼성·SK의 투자 방향을 사실상 유도하고 있다며 '최악의 관치 경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양대 그룹 총수를 연이어 만나고 청와대가 투자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이러한 의혹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숨 가쁜 추진 뒤에 숨은 현실적 과제
반도체 공장은 인력과 생태계, 인프라가 생명입니다. 기업들은 그동안 인력 확보와 협력사 밀집도 문제로 지방 이전에 선을 그어왔는데요. 특히 HBM 같은 첨단 메모리는 개발자와 생산 공정이 밀접해 정주 여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업계에서는 현재 국내에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지방 부지가 없어 최소 10년의 인프라 구축 기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전력 공급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공정 라인에 필수적인 기가와트급 전력을 태양광만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고 막대한 에너지 저장 장치 비용도 수반됩니다. 용수 확보를 위해 충청권 대청댐 물을 끌어오는 방안까지 거론되면서 지역 간 물 분쟁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수도권 포화와 AI 수요 폭증은 반도체 증설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만 천문학적 고정비가 드는 반도체 투자가 정치적 시간표가 아닌 산업 논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지적에는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공약의 무게만큼이나 책임 있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