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공백 속에서도 늘어진 임신중지약 도입
경구용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우리나라에서 6년째 교착 상태를 빚고 있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뒤, 대체 입법 시한이었던 2020년 말까지 관련법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생긴 공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사이 현대약품은 식약처에 세 차례나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결국 의약품은 존재하는데 산모들이 제대로 된 의료 접근을 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국제적 기준과 비교하면 한국의 현주소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미 전 세계 101개국이 경구용 임신중지 약물 사용을 허용했고,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33개국, 즉 87%가 도입을 완료했습니다. 심지어 일본도 2023년에 승인을 마쳤는데, 한국은 폴란드와 튀르키예 등과 함께 여전히 불법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도 필수 의약품으로 꼽았다
사실 이 약물의 안전성은 오래전부터 검증되었습니다.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성분이 포함된 이 약물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 필수 의약품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모성사망률을 낮추고 임부의 건강과 존엄성을 보호하는 대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 체계 아래 처방전 없는 약국 구매나 우편 배송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연방대법원은 관련 접근성을 제한하려는 소송을 만장일치로 기각하며 사용권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법적 테두리가 없다 보니 식약처가 허가를 내줄 명분을 찾지 못한 겁니다. 헌법재판소가 입법부에 시정 명령을 내렸음에도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행정부가 마냥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입법 공백이 행정의 판단까지 얼어붙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적 허용 검토에도 근본 해결은 입법에 달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정부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를 통해 의료진에게 재량권을 부여해 약물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 검토를 지시했고, 성평등가족부와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부처 간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입니다. 다만 이 방식이 법 개정 없이 시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반가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임시방편적인 행정 조치로는 지속 가능한 제도 정착이 어렵고, 언제든 정책이 뒤집힐 수 있는 불안정성도 남아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마련되어야 의료 현장도, 제약 업계도, 그리고 임신한 여성들도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6년이나 지체된 만큼 더 이상의 공백은 피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