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을 둘러싼 '양자택일' 압박
미국이 인공지능 기술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동맹국들에게 더욱 강경한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을 포함한 35개 AI 협력국에 서한을 보내, 중국 주도의 AI 협력체인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에 참여할 경우 미국 중심의 연합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요. 이는 반도체와 핵심 광물에 이어 AI 공급망까지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됩니다.
미국이 이런 경고를 보낸 데에는 카자흐스탄의 사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미국 주도의 팍스 실리카에 가입한 뒤, 중국의 AI 협력체에도 이름을 올렸는데요. 미국은 이를 공급망과 기술 신뢰성을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고, 중복 가입을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으로 만들었습니다. 팍스 실리카 참여가 단순한 회원 가입이 아닌 약속이며 헌신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동맹의 압박과 기업의 현실 사이
미국의 이런 요구는 기술 패권 경쟁의 격화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국은 AI 모델과 반도체, 핵심 광물 공급망을 우방국 중심으로 구축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 하고 있죠. 반면 중국은 오픈 소스 AI 모델을 앞세워 러시아 등 29개국과 협력망을 넓히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양측 모두 자신들이 설정한 국제 규칙과 표준을 확산시키려 경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안보 동맹의 논리와 산업 현실은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애플은 중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알리바바와 손잡고 현지 전용 AI 모델을 개발했는데요. 중국 당국도 이를 승인하며 사실상 미국 기업의 중국 내 AI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들은 거대한 시장과 규제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정부의 진영 논리대로 쉽게 선을 긋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이 마주한 외교적 시험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매우 복잡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안보와 첨단 반도체 기술 측면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교역 상대이며,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죠. 중국과의 협력을 일괄적으로 끊어낼 경우 시장 접근성이 약화되고, 기업 경쟁력에도 타격이 갈 수 있습니다.
다행히 미국과 중국은 오는 9월 정부 차원의 AI 규칙 회담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프런티어 AI의 안전 기준과 위험 평가를 논의할 자리인데요. 앞으로 AI 경쟁은 모델 성능을 넘어 누가 국제 표준을 설계하느냐가 산업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겁니다. 한국은 단순히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 신뢰할 수 있는 AI 평가 체계와 안전 기준을 제시하며 국제 규칙 형성에 적극 참여해야 할 시점입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능력과 디지털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술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