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속 기적과 사라진 마을들
네팔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참사가 전 세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빙하와 자연댐이 붕괴하며 쏟아진 물보라는 수많은 마을을 집어삼켰고, 수력발전 터널에 갇힌 근로자들은 진흙더미를 뚫고 기어서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 소녀가 이틀 만에 구조되고, 중학교 교장이 학생 900명을 대피시킨 사연이 전해지며 희망의 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참혹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80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3,000명에 육박합니다. 특히 한국인 9명이 연락 두절 상태여서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이 현지로 급파되었는데요, 터널에 고립된 노동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대는 접근로를 뚫고 산소를 주입하는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외국 구조대 제한에 갇힌 골든타임
이번 재난에서 가장 큰 논란은 네팔 정부의 대응 방식입니다. 2015년 대지진 당시 외국 구조대 통제 실패로 비난받았던 트라우마와 중국 접경지의 안보 문제를 이유로, 네팔은 상당수 외국 구조팀의 진입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권 국가로서 재난 현장을 관리하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문제는 통상적인 골든타임인 72시간을 훌씬 넘긴 지금, 외국인 실종자 수색을 위한 헬기 운항마저 불허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정부와 두산에너빌리티 등 기업들은 실종자 수색을 위해 헬기 임차까지 신청했으나, 네팔군은 안전과 항공 혼잡을 이유로 운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신속대응팀은 육로로 방향을 전환해 비두르 바타르 지역에서 사고 지점까지 하루 내 접근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놓고 본격적인 수색에 나섰습니다. 네팔 당국은 외국 인력의 직접 투입은 막되 기술 지원은 요청하는 상황이라, 협력과 통제 사이에서 한국 측은 신중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녹아내리는 히말라야가 남긴 과제
사실 이번 홍수의 본질은 기후 위기에 있습니다. 당초 네팔 정부는 지진을 원인으로 발표했으나, 이후 무너진 빙하가 지면을 흔든 것으로 정정되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히말라야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빙하호 붕괴 빈도가 10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고, 이번처럼 시속 180km의 토사류가 7분 만에 민가를 덮치는 재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방재 인프라가 취약한 네팔은 복구 비용만 GDP의 1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국제사회가 긴급 지원에 나섰지만, 시신 부패로 인한 전염병 확산 우려까지 겹쳐 신원 미상 유해들이 일괄 매장되는 비극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밤사이 내린 추가 폭우로 수색이 중단되는 등 2차 재해의 그림자도 여전한데요, 히말라야 만년설이 사라지면 세계 인구 40%의 식수원이 위태로워진다는 점에서 이번 참사는 네팔만의 문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