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그날, 국회를 지킨 사람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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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정 · 2025년 12월 1일 오전 7:04

발행: 2025년 12월 1일 오전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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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시 국회에서 벌어진 사건의 생생한 기록. 계엄군의 진입을 소화기로 막아선 보좌관부터 총부리를 마주한 기자들, 국회를 에워싼 시민들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날의 역사적 순간을 재구성한다.

총부리를 마주한 밤

2025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20여 분 만에 국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박지웅 보좌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헬기가 국회 상공을 가르던 그 순간, 우리에겐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본회의 개회만이 유일한 목표였습니다"라고 증언합니다. 이미 국회 정문에서는 경찰과 시민들이 뒤엉키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고, 곧이어 계엄군의 진격이 시작되었죠.

소화기로 맞선 저항

국회 본관 2층에서 벌어진 대치는 마치 '게릴라전'을 방불케 했습니다. 보좌진들은 의자와 책상을 쌓아 의원들의 진입 경로를 확보하면서 몸으로 버텼습니다. 박 보좌관은 "과거 '동물국회'에서의 몸싸움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디를 막아야 할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죠"라고 말합니다. 상황이 고조되던 중, 계엄군이 의원실 창문을 깨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소화전으로 고정해둔 문마저 뚫리자 박 보좌관은 소화기 핀을 뽑아 계엄군 방향으로 분사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뛰어오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정신없이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창밖을 채운 시민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층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던 중 찾아왔습니다. 박 보좌관이 창밖을 내려다본 순간, 국회 정문 앞을 에워싼 수많은 시민들이 '계엄 무효'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풍경이 그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사무실 안에서도 결의가 더욱 굳어졌다는 거죠. YTN 취재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여의도 일대에는 방송을 보고 모여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한 기자는 "군인들의 고민하는 표정이 선뜻 총을 쏘지 못하게 만든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기록하는 사람들

현장에 있던 YTN 취재기자들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영상기자 한 명은 "총부리를 겨눈 군인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에 집중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비상계엄 상황이 생중계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이들의 촬영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국회 사무총장 김민기는 의원들이 의회에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계엄군과 맞서 싸워야 했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교훈

계엄 해제 의결 이후에도 국회는 계엄 재선포 가능성에 대비해 '고지전'을 이어갔습니다. 박 보좌관과 동료들은 밤새 자리를 지켰고, 그 과정에서 국회는 입법부로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최하위를 차지하던 국회가 계엄 이후 국민 신뢰도가 상승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습니다. 박 보좌관은 "불법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피가 흘러야만 내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날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기억하고 교육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