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아닌 집에서 돌보겠다는 약속
오는 3월 27일, 한국의 돌봄 체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날입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의료, 요양, 복지 등 분리되어 있던 서비스를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로 묶어, 고령자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살던 집’에서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도입기, 안정기, 고도화기의 3단계 로드맵을 세워 2030년까지 연계 서비스를 60개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요양병원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죠.
요양병원은 초고령사회의 핵심 인프라로 2006년 360곳에서 2020년 1582곳으로 4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입원 환자 중 약 15.6%는 의학적 필요성보다 돌봄이나 주거 문제로 머무는 ‘사회적 입원’ 상태로 분석됩니다. 이는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으로 이어지며, 요양병원 입원 진료비가 2008년 1조 3000억 원에서 2023년 7조 원을 넘어서는 등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통합돌봄은 바로 이런 ‘병원 중심’의 돌봄 구조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해 불필요한 장기 입원을 줄이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뭉치는 지역의 손길
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에 한창입니다. 과천시는 의료·복지 전문가 등 15명으로 ‘통합지원협의체’를 꾸려 첫 회의를 가졌고, 전라남도는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어 퇴원 환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진주시와 시흥시는 각각 보건의료 협력체계를 만들고 관내 요양병원 11곳과 손을 잡아 퇴원 후 돌봄 공백을 막겠다고 나섰죠.
도시와 농촌, 모두 고민은 다릅니다. 서울 서초구는 ‘서초형 통합돌봄’을 선포하며 동주민센터에서 신청받아 5개 분야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반면, 인구의 45.6%가 65세 이상인 경북 봉화군 같은 산간 초고령 지역은 넓은 면적에 인구가 흩어져 서비스 접근성이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복지부 이스란 제1차관이 직접 봉화군을 찾아 현장 점검에 나선 것도 이런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지역은 인프라와 인구 구조라는 서로 다른 출발선에 서 있지만, ‘지역에서 돌본다’는 목표는 동일합니다.
현장의 환호와 넘어야 할 산
제도의 장점은 이미 재택의료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인천의 한 재택 의료팀은 뇌경색 환자에게 집에서 혈압 검사와 재활 지도를 제공했고, 구강암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콧줄 교체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환자 가족들은 병원 왕래의 부담이 줄어든 점에 큰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과제도 함께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인력, 특히 의사 부족입니다. 재택의료의 핵심인데, 의사 동행이 필수인 현재 규정 아래에서는 인력 수급이 어려운 지역에서 서비스 제공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의사가 직접 동행하지 않고도 지도와 처방을 통해 서비스가 이어질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한, 복지부 스스로도 인정하듯 농어촌 보건지소의 인력 부족과 보건소의 소극적 역할 문제는 통합돌봄의 거버넌스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법 제정이 끝이 아닌, 이제야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체계를 만드는 진짜 시작이 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