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이 만든 역대 최대 예산
정부가 내놓은 2027년도 예산안은 규모부터가 이례적입니다. 총지출을 올해보다 93조 원 늘린 820조 9천억 원으로 잡았는데요. 이는 2005년 총지출 개념 도입 이후 가장 큰 증가폭입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법인세와 소득세가 급증하면서 세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인데, 덕분에 통합재정수지는 59조 9천억 원 흑자를 기록하고 국가채무비율은 48.3%까지 낮아질 전망입니다. 대규모 지출 확대와 재정 건전성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입니다.
AI와 반도체에 쏟아붓는 미래 투자
이번 예산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미래 성장동력입니다. 정부는 AI와 반도체, 피지컬 AI를 아우르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만 21조 3천억 원을 투입합니다. 특히 AI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69%나 급증한 4조 1천억 원이 배정되었고, 과기정통부 전체 AI 예산은 9조 4천억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최고 성능 GPU를 1만 장 구매해 국민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개형 AI 모델을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반도체 특별회계 2조 원을 신설해 생산기지 구축을 가속화하고, 소부장 자립화율 50% 달성을 목표로 합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및 용수 기반시설에 1조 9천억 원을 반영했는데, 에너지저장장치와 변전소 구축에 속도를 내는 등 첨단산업 뒷받침에 집중했습니다.
청년층과 저출생 대응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청년 지원 예산만 43조 3천억 원으로 늘렸고, 소득 요건 없는 청년미래적금과 혼인 및 출산 지원 패키지를 새로 도입했습니다. 전기차 보급 예산도 역대 최대인 2조 1천억 원으로 확대해 보조금 지원 물량을 43만 대로 늘리고 택시 등 영업용 차량까지 지원 범위를 넓혔습니다.
162조 원 미래대응기금, 기회와 논란 사이
세수 호황으로 생긴 여유자금 162조 3천억 원을 미래대응기금으로 조성한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이 중 45조 4천억 원은 내년에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 및 인재 등 4대 분야에 바로 투입되며, 나머지 104조 4천억 원은 향후 세수 감소에 대비한 여유자금으로 적립됩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추경 없이도 신속하게 재정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기금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지출 항목의 30%까지 국회 재심의 없이 정부가 임의로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한 탓에 쌈짓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업 목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국가재정법상 기금 설치 요건에 맞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학계는 국회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2027년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희소식을 발판 삼아 미래 먹거리와 청년 및 지방 문제에 역대급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다만 세수 변동성이 큰 특수한 상황에서 조성된 초대형 기금의 투명성과 효율성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