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아닌데 꺼낸 비상장치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미국과 일본이 이례적인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양국은 연준의 해외·국제통화당국(FIMA) 레포 기구를 활용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이 기구는 2020년 팬데믹 당시 외국 중앙은행들에게 긴급 지원하려고 만든 비상장치인데, 현재는 특별한 위기 상황이 아닙니다.
이번에 일본이 이 기구를 쓰게 된 건 엔화 지지 자금을 마련하면서 미국채를 시장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일본이 보유한 미국채를 대량 매각하면 미 국채 금리가 추가로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3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5.28%까지 오르며 1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여기에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FIMA 레포 한도 상향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한도 조정은 통상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결정할 사안인데, 행정부 수장이 나서면서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이를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달러가 아닌 유로를 팔았다
미국은 이번 시장 개입에서 조금 특이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달러화를 직접 푸는 대신 유로화를 매도하고 엔화를 사들인 것인데요.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미 재무부를 대신해 거래를 실행했고, 이는 달러 가치를 지키면서 엔화 저평가를 해소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베선트 장관은 이 조치가 외환보유액의 단순한 재배분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유로화는 현재 균형 가격에 가깝지만 엔화는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즉, 달러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 않으면서 엔화 가치만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담긴 겁니다. 개입 이후 급락하던 엔화는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의 개입이 장기적으로 엔화 약세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이 유럽 파트너들과 긴밀히 접촉하며 조율한 만큼, 단기적 시장 안정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화의 변동성은 여전히 과제
엔화 부양에 나선 미국은 이번 기회에 한국 원화의 불안정성도 거론했습니다. 베선트 장관은 인터뷰에서 한국 원화에서 과도한 변동성이 목격되고 있다고 직접 언급했는데요. 이는 미 행정부가 원화의 지나친 약세와 변동성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원화는 엔화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 변동 폭은 훨씬 컸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원화는 달러 대비 12.5% 절하됐는데, 이는 엔화의 10.6%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지난 5월과 6월에는 엔화와 원화가 엇갈린 흐름을 보이며 원화의 변동성이 더욱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한국 외환당국이 원화 안정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할 명분을 마련해 준 셈입니다. 다만 미국의 개입이 원화까지 직접적으로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원화 가치는 여전히 국내외 경제 상황과 외환당국의 대응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