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회가 정한 두 개의 축
북한이 노동당 제9차 대회를 마치며 앞으로 5년간의 국가 운영 방향을 명확히 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보이는 두 가지 핵심 결론인데요. 하나는 대내적으로 '자력갱생'을 불변의 정치 노선으로 재천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남적으로 한국을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며 관계의 근본적 재정의를 시도한 것입니다. 이번 당대회는 단순한 의례적 행사를 넘어, 대내외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김정은 체제의 전략적 선회 지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식 매체인 노동신문은 대회 직후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의 당 이념을 강조하는 논설을 게재했습니다. 특히 자력갱생을 '사회주의 건설의 근본 방향'이자 '혁명의 불변의 원칙'으로 부각시켰죠. 이는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강조한 기조를 확장 심화한 것으로, 외부의 지원이나 환경 변화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모습입니다.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회 연설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재확인하며 남한을 '동족'의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고 '주적'으로 규정했는데요. 나아가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며 핵무력의 역할을 시사하는 등 극단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자립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단절을 선언하는, 이 두 가지 메시지가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겁니다.
자력갱생, 선택이 아닌 필수의 생존 전략
북한이 자력갱생을 이토록 강조하는 배경에는 뚜렷한 현실적 고민이 있습니다. 장기화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국경 봉쇄는 북한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외부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경제 운용의 기본 방침을 '스스로 만든다'는 원칙으로 굳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자력갱생은 단순한 선전 슬로건을 넘어, 실제 경제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죠. 노동신문은 8차 당대회 이후의 5년을 '첫 단계 개척투쟁'의 기간으로 규정하며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습니다. 이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당의 지도 아래 경제 목표를 달성해 나가겠다는 주민 사기 고취와 체제 결속을 위한 메시지로 읽힙니다. 대회 기념 대공연을 평양에서 성대히 연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내부 단결을 다지고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동력을 모으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이 자력갱생 노선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내생적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북한 지도부는 이 길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외부 환경이 변하더라도, 혹은 더 어려워지더라도 자체 역량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는 대외관계, 특히 한국과의 관계 설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과 평화공존 정책의 충돌
한국을 향한 '영원한 적' 선언은 이런 대내적 고립화 노선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민족동질성 회복'의 차원이 아닌, 완전한 '국가 대 국가'의 적대 관계로 재정의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평화 모멘텀을 완전히 무효화하고, 앞으로의 모든 접촉과 교류를 새로운 원칙 아래에서만 검토하겠다는 선제적 포석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적 전환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상당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북 무인기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등 기본적인 신의를 보이려 했지만, 북한의 응답은 극도로 강경했습니다. 통일부는 북한의 발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을 위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남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긴 호흡'을 강조한 바 있죠.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북한이 대남 정책의 근간을 흔들리는 정권에 대한 '붕괴' 논리까지 포함시켜 재편한 만큼, 기존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 관계 개선 모델 자체가 도전받고 있습니다.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측에서 상대방이 스스로를 '영원한 적'이라고 정의할 때, 어떤 형태의 '공존'이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향후 전망은 불확실성이 큽니다. 북한의 자력갱생 노선이 실제 경제 회복에 어느 정도 성공할지, 그리고 대남 강경 기조가 실질적인 군사적 도발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9차 당대회를 계기로 북한이 내포된 위기 관리를 위해 대내적 결속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확고한 적대선을 그음으로써, 남북 관계는 과거와는 다른, 더욱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